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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러셀 일지 1: 출발 전
    카테고리 없음 2023. 3. 17. 18:41

    시어른들을 돌보러 브러셀에 왔다.

    두 달 전, 어머님이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완화치료를 받으시게 된 뒤 두 분이 한 방을 쓰시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시아버님이 독실로 옮기신 뒤 우울증에 빠지셨고, 동시에 지력과 표현력도 급격히 저하되시고 계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치매가 오셨다는 말도 들렸다.

    남편과 나는 약간 안타까웠다. 아버님과는 대화를 하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그만한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 듯해서였다.
    우리 생각에 보청기의 도움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청력이 안좋아지셔서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 외에도 (어쪄면 약간 극복이 가능한) 여러 요인이 있었다.
    첫째, 아버님의 소극적 성격에 대한 이해.  항상 어머님을 통해서 남과 대화를 해오신 아버님이 갑자기 혼자 남겨진 쇼킹한 상황에 남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둘째,  아버님은 원래 성격이 소극적이고, 자기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시기에, 건강하실 때도 대화를 주도하신 적이 없다. 자기가 원하는 대화 주제가 던져지면 열심히 이야기하셨지 아닌 경우에는 침묵 유지. 그러나 대가족, 웃음소리와 대화가 끊이지 않는 집안에서 아버지의 그런 특성은 간과되었다.
    세째, 아버님과 ‘대화‘라 함은 정상적으로 give and take 식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아버님이 어떻게든 입을 열어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표현을 하여 입 근육, 지능의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치료‘의 목적이므로 그 무슨 주제든 아버님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주제를 택해야한다. ’아버님, 오늘 어떠세요?‘ ’‘잘 주무셨어요?’ 란 대화는 전혀 효과적인 approach 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멀리 있는 남편과 내가 주고받는 한탄일 따름, 현장에서 고생하는 식구들에게 멀리서 잔소리를 할 수는 없는 일.
    동시에 하루 한 시가 중요한 노년에 아버님께서 아무런 노력도 없이 퇴화되어가는 모습을 방관하자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쟈클린 이모, 시어머님, 동서들이 시아버님을 만나고 나서 전해주는 말은 다 같았다. ‘나를 아는 척도 안 하더라’ ‘나한테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 들을 수 없다’ 등등.
    가끔 문병객들이 보내오는 사진들도 사회와 담을 쌓은 아버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표정하거나 슬픈 표정.
    우리와 화상 채팅을 할 때도 마찬가지.
    남편은 질문을 큰 글씨로 타이핑해서 사진을 보내고 아버님은 그걸 천천히 읽으시고 대답을 하셔야하는 대화는 성공적지 못했다.
    “난 이제 끝났어” 란 말을 하시기나 했다.

    (우리가 아버님과 화상채팅을 할 수 있게 도와주던 시동생과 남편을 보고 경악했던 일 하나.
    아버님이 “피곤하다“ 하시더니 ”왜 내가 피곤하지?“ 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두 문장을 연달아 이야기하신 적이 없어서 축하해야할 상황인데
    남편과 시동생은 대서양의 거리가 무색하게 동시에 ”그건 아버지가 늙어서지!“ 라고 하더라.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해야하나… 남자들…ㅠ))

    어느 날 내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시동생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예기치 않은 화상 채팅을 하고 있었나보다.
    남편이 큰 소리로 불렀다.

    ”팜펨, 팜펨, 화상채팅 가능해?“

    물론이지! 하며 뛰어내려갔다.
    남편이, ”아버님이 당신을 찾아!“ 라고 했다.

    자기 얼굴을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찾았다고 하는 남편의 얼굴에 기쁨이 한가득.
    그저 피동적으로 자기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고, 대화의 노력에 참여하지 않으시는 평소의 아버님과 다르게,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화면에 큼직하게 얼굴을 디디미니 아버님 얼굴에 미세한 미소가 번졌다.
    남편은 ”빠삐가 웃네!“ 라고 소리쳤다.

    그 날 저녁,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이들에게 마치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듯이 이렇게 저렇게 조언/잔소리를 하지 않으려면, 그러나 지금 지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아버님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끔 도움을 드리려면 우리 둘 중 누군가가 가야할 것이다. 남편이 ‘그런 이야기는 당신이 전문이니까, 나보다 당신이 더 적합할 것같다’ 라고 했다. 우리의 걱정은 나의 어머니…엄마께 이야기를 하니 당장 다녀오라고 축복해주셨다. 본인은 건강관리 철저히 하면서 잘 유지할테니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너의 시부모님을 도와야지!“ 라고 하셨다.

    그래서 티켓을 구입했고, 나는 어제 출발했다.
    공항에서 우리는 ”내 부모님 잘 봐줘“ ”우리 엄마 잘 봐줘“ 라며 웃음의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남편의 부모님, 나의 시부모님을 잘 돌좌드리리라 마음 먹었다.

    ——————————————-

    브러셀로 떠나기로 한 뒤,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내 그림 그리기는 여러 감정을 제자리에 정리해서, 이후에 닥칠 여러 상황에서 옛날의 일들을 겪으면서 겪은 감정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더 힘들어지지 않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기에
    브러셀에 떠나기 전에 감정 정리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 싶어서 열심히 그렸다.

    오빠와의 작별의 순간.
    이콘 성화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매 붓질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이콘 성화의 주인공은 성인 (saint ) 인데 오빠를 성인으로 하는 것은 다른 종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서 꽃으로 대체..
    여전히 금박 은박 클림트 스타일을 따라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것이 생각났다.
    오빠가 세상을 떠나던 순간..
    부모의 죽음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오빠의 죽음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컸던 충격.
    얼어붙어버렸던 감정.
    그러나 얼어 있어야했던 감정.
    압도되지 않고 여러 일을 처리 하기 위해서.
    부모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팜펨아, 다 생각해. 이 그림 그리는 동안 뭐든지 다 꺼내놓아라. 그래야 해‘ 라고 되뇌이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서서히 떠오른 사실,
    내가 ’들장미소녀 캔디‘처럼 살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매 순간 함께 해주셨던 주님 때문이었다는 사실.
    맞아! 그랬어!!!!
    나는 외롭지 않았어.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옛날 감정들을 다 꺼내보니, 잿빛 감정들 무더기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보석들이 있었다.
    감사함, 희망, 보람.

    어쩌면 지금 내가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어서 옛날, 힘들었을 때, 압도되지 않고 활기차게 열심히 밝게 살았던 것을 망각하고
    당시를 그저 ’슬픈 감정의 억압‘으로만 보고 있는 거구나.

    기억이 되살아나고,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시각이 생기면서 나의 마음은  새로이 감사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 날 그림이 완성되었고, 비행기를 탈 무렵, 나의 마음은 감사함과 기쁨으로 가득 차있었다.


    비행기 타고 오래 오래 기도했다.
    구름 속으로 비행하면서 옛날 하나님을 만난 뒤 예루살렘에서 하이파로 돌아가는 길의 버스 창으로 본 하늘, 구름, 그리고 나의 멈추지 않던 감격의 눈물의 기억이 났다.
    비행은 ‘피정’의 시간이 되었다.

    브러셀에 내렸을 때 비가 온 뒤 개인 날씨, 쌀쌀하지만 밝고 찬란한 한국 늦가을 날씨..
    나의 걸음은 춤추듯 가벼웠다.

    아침 9 시, 오후 체크인 전에 짐만 맡기려고 들린 호텔은 나에게 early check-in 을 하게 해주어 침대에 누워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비즈니스 센터에서 중요한 이멜을 하던 나에게 지배인이 직접 카푸치노 커피를 갖다 주었고,
    브러셀에서도 대부분 영어만 쓰는 나에게 그가 잠시 실수로 불어로 이야기를 해서 불어로 대답을 하는 순간 그는 감격해서
    자기 인생사 다 털어놓았고, 또 다른 직원은 나에게 커피 리필을 해주러 왔다가 자기의 이야기를 많이 털어놓았다.
    내가 대화를 유도한 게 아니라 내가 동양 사람인데 미국 주소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묻다가, 왜 불어를 하느냐 등등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하니
    산전수전 겪은 자기들과 공통점을 발견하고 자기들 이야기를 내놓는 것이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출신으로 모로코 출신 벨기에인 부인을 만나 스위스에서 일하다가 결국 부인의 가족이 많은 벨기에에 정착한 지배인이나
    독일 출신 그리스인인데 크레테 섬에 휴가 갔다가 아일랜드 출신 부인을 만나 프랑스에서 일하다가 벨기에에 와서 살게 된 직원이나,
    fascinating life stories!  나는 다시금 사람들은 다 책 한 권의 이야기를 품고사는구나 느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완전히 충전된 상태에서 나는 시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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