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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심리치료
    카테고리 없음 2023. 3. 8. 15:27

     
    작년 말, 이스라엘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시어머님 건강 악화로 남편이 급히 브러셀로 떠난 뒤 마음이 무척 무거워 글을 쓸 수 없었을 때였다.

    나는 삶에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마다 글쓰기라는 therapy를 통해서 극복해 왔는데 글을 쓸 수 없으니 참 힘들었다. 집중해 글 쓸 시간 없어서, 혹은 시간은 있는데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또는 시간도 있고, 육체적 힘도 있는데 의욕이 안 나서.... 필사도 중지. 글쓰기도 중지. 펜과 나는 멀어졌다.

    다행히 내 어두움의 원인을 찾았다. 지난 10 년간 내가 적절히 애도하지 않았던 많은 '상실' 들.  숨차게 그저 앞에 닥치는 일만 해결하면서 달려오다보니 미처 돌보지 못했던 너덜너덜해진 마음.  오빠의 죽음,  부모님의 집과의 작별과,  (부모님, 오빠, 언니 나로 이뤄진) '핵가족'의 종료,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펠릭스의 죽음... 적절히 애도되지 않은 많은 사건들로 내 마음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되었다.
    나를 재정비해야했다. 물러터진 마음, 얽혀버린 정신 상태에서 당장 어머니의 암치료와  앞으로 서서히 닥칠 시부모님, 이스라엘 어머니, 나의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겠나…

    차고에 옛날에 밑그림을 그리다가 중지한 캔버스가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해서 옛날에 쓰던 물감들을 찾아보았다더니 2014 년, 9 주 동안 아크릴화 초보자 클래스를 들었을 때 샀던 물감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튜브를 짜니까 놀랍게도 선명한 색상의 물감이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내 물건을 찾은 건데 마치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은 듯한 기쁨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이제까지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오빠의 죽음, 엄마가 편찮으셨을 때, 아버지 수발을 들 때, 아크릴화를 그리고, 아이패드에 두들을 그렸다.  뭐가 뭔지 모르고 하는 거였지만 집중하는 데는 그림 그리기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림 그리기가 예술적인 추구가 아님은 확실하다. 왜냐,  심리치료 효과를 보고 마음이 안정되면 그림을 중지하기 때문에. 그러니 차고에 8 년간 물감가 캔버스가 방치되어 있었던 거고.)

    당장 캔버스를 방으로 옮겼다.  10 년 전에 색연필로 그렸던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의 기다림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모든 게 다 정지되고, 현실에서 분리되어 있는 듯한 막막함과 깜깜함. 거기서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는 자궁 안의 늙은 여인.

    마음이 급해서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는 대신 붓으로 대강 본을 뜨고 그렸다. 여전히 마음 가는 대로 색칠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이콘 성화 흉내도 내보고, 비잔틴 모자이크 흉내도 내보고 하다가,  Gustav Klimpt 그림들의 반짝거리는 '금'을 입혀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방법을 몰라 유튜브로 찾아보니 아니나 달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영상들이 있었다.  재료를 주문해 십자가 부분을 금으로 덮었다.  덕지덕지한 지저분한 그림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 되었다. 점 하나 찍고, 선 하나 긋는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잊을 수 있는, 그리고 바로 그래서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 의식 안에는 내 모자라는 그림에 대한 어떠한 자의식도, 어떠한 censorship 도 없었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붓 자국이 지저분해서 마커 펜으로 배경을 손질을 하다 보니 도대체 정체성이 모호한 그림이 되었지만, who cares! 내가 좋으면 끝! 
     

     
    그림을 마치자마자 브러셀로 갔다. 짧은 일정 중에 어르신들을 매일 뵈며 돌봐드리는 것은, 이제까지 아무것도 못해서 무력감을 느끼던 나에게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켜 주었다. 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하루 종일을 기치 여행에 할애해 브러셀에 와서 나에게 사랑을 퍼주고 간 혜지 언니와 보낸 3-4 시간이었다. 지난 10 년간 내 삶에서 사라져 가는 사랑하는 이들에만 집중해오고 있던 나는 갑자기 나타난 언니와 팔짱을 낀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브러셀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나의 삶이 ---평소와 달리 유독 아름다웠던 그날의 브러셀 날씨처럼--찬란하게 느껴졌다.  
    여행 끝나고 온 뒤에는 크리스마스 휴가로 온 아이들과 바빠서, 그림을 그릴 방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러나 벨기에 여행 뒤 이미 치유의 작업이 시작되었기에  나는 글은 못써도 일기를 쓰는 등, 글의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휴가가 끝나고 아이들이 떠난 뒤 새로운 그림을 시작했다.

    지난번 그리면서 답답하게 느꼈던 점, 문제점들을 연습해서 고쳐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번과 같이 '자궁 안의 할머니' (ㅠ)를 그렸다.
    그런데 문제점을 고치는 작업이기는커녕, 두 번째 그림은 엄청 고생스러웠다. 왜냐,  매사에 내 문제점이 보여서였다.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붓을 쓰는 법도, 색 혼합하는 법, 물 조절, 다 서투르니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오고 있었다.  아크릴 물감이 그림 수정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악용해서 원래 그림을 다 새로 깔아버리고 다시 그리고, 또 그걸 새 그림으로 깔아버리는 작업이 반복되었고, 색깔은 탁해지고 붓자국도 조잡하고 지저분했다. 

    심리 치료를 목적으로 한 그림 그리기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곰곰 생각해 보니, 첫 번 그림을 그릴 때는 숨이 갑갑해서 다급히 숨길을 트려는 목적으로 그렸고, 그림을 어떻게 하면 잘 그릴 수 있을까는 나의 주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두 번째 그림을 그리면서는 나에게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라는 욕구가 지배적이었다. 그런 욕구는 내가 모자라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색깔의 선택, 붓놀림, 어색한 이미지... 등등 그림의 모든 요소요소를 비판의 눈으로만 보게끔 만들었다. 

    나는 '내가 그림을 그린 목적이 나를 위로하기 위함인데, 이런 자멸적 태도는 절대 용납하면 안 된다!!'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하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만인의 선생님, 유튜브를 검색했다. acrylic painting, beiginners... 두들기니 우후죽순, 영상들이 쏟아진다.  내게 도움이 되는 영상들이 너무도 많았다. 마치 선생님들께서 나를 염두에 두고 뽑으신 듯한 제목들---'초보자를 위한 아크릴 페인팅' '초보자가 하는 실수 다섯 개' '아크릴 화 그릴 때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다섯 가지' 등등--에 친절한 설명.

    급히 덤비지 않고 기본적인 것은 공부를 좀 하고 나서 그리기 시작할 것을... 아쉬웠다. 무작정 덤벼들어서 지금까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실수'만 하고 있었다.  밑그림을 참을성 있게 그리는 거라는데 충동적으로 밑그림을 대강 그리고, 급히 색깔을 입히다가, 또 마음이 바뀌어 밑그림을 무시하고 다른 계획을 세워 원래 그림을 자꾸 고치곤 했으니 색깔이 지저분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유튜브로 배우다 보면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다시 다 덮어씌우고, 다시 그리고, 다시 엎어버리고... 하면서 느꼈던 일말의 패배감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겠구나,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시작된 유튜브 탐구.... 처음에는 영어로 영상들을 찾아보다  한국어로도 검색해 보니, 오, 이건 정말 새로운 세상! 설명을 잘해주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어찌나 많던지!  붓 고르기부터 시작해서, 색을 혼합하는 법, 붓 빠는 법 등 아주 나 같은 초보가 혼자서는 배울 길이 없는 기본적인 정보들을 자상하게, generously 공유해 주심은 물론 본인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림, 삶에 대한 철학도 나눠주는 선생님들.. 나는 사랑에 빠졌다. 너무도 감사해서 그들의 작업장이 가까이 있다면 마카롱이니 커피니 사 갖고 찾아가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을 지경.

    문제가 또 생겼다.  내가 비디오들을 열심히 보다 보니 그림은 안 그리고 남이 그리는 그림을 구경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 결과 나는 다시금 기가 죽었다.  선생님들의 멋진 그림과 대조되는 나의 누추한 그림이 비교가 되어 다시금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한 인식도 첨예해져서였다. 이러다간 therapy는커녕,  '그림을 못 그려서' 심리 장애를 얻거나, 아예 그림 그리기를 포기할 지경이 되겠다 싶었다. 안된다!!!  

    나는 비디오 학습을 당분간 중지하고, 유튜브에서 배운 것들을 기억한 상태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연습을 함으로써 나의 문제들을 고쳐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림도 글쓰기와 매 한 가지야. 내가 재밌는 게 우선이다. 내 안의 censorship, 비판의식을 거부하자!" 그래서 포기할 뻔했던 두 번째 그림을 간신히 끝마쳤다.


     
    세 번째로 그리고 싶은 주제는  나의 고양이 펠릭스.  3 월 초면  사망 일주기를 맞이하는 펠릭스를 그림으로 기리고 싶었다. 예전에 그렸던 두들을 참조했다.  

     
    펠릭스 그림은  '상실'의 애도를 치유하기 위한 therapy 그림작업으로서는 첫 번째 그림이다.  고양이가 영험하고 성스러운 동물로 추앙받고, 죽은 뒤에는 미라로 만들어졌다던 이집트. 영국의 박물관에서 고양이 미라들을 보면서 우리 펠릭스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이제  나의 기억 안에서 immortal 한 펠릭스!
    펠릭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내 안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노상 문제점을 찾고 비판하는 부릅뜬 critic의 시선을 거부하기로 했다.  대신 나 스스로를 '나의 수준을 이해하고 이끌어주는 다정한 유치원 선생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이건 요즘 내 친구의 손녀딸의 유치원 선생님들의 영향. 친구 손녀딸이 똘똘하고 사랑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preschool 선생님들의 능력, 인내, 사랑에 탄복했음.) 어린아이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칭찬해 주고, 감탄해 주고, 잘 못하면 독려해 주고,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게 유도해 주는 웃음이 많고 친절한 유치원 선생님처럼 나는 스스로에게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그리기만 하면 돼. 마음 편하게 먹어. 하다 보면 붓이 네 말을 들어줄 거야. 그리다 보면 색깔이 예쁘게 나올 거야..."라고 격려해주고 있었다.

    펠릭스 그림에서도 여전히 나는 shamelessly 클림트의 스타일을 모방했다. 그리고 부실한 능력 탓에 여전히 나는 배경을 두어 번 갈아엎었다. 그러나 매 시간이 즐거웠고, 유치원 선생님의 마음 가짐 덕에 비판과 낙담 없이 온전히 그림을 그리며 펠릭스를 추억할 수 있었다. 나의 능력을 탓하지 않고, 내 뜻대로 안 되는 그림을 '미워하지' 않고 그리니 저절로 행복해졌다.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나를 다구치지 않고,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착하고 친절한 또 하나의 나를 만난 게... 나는 이 그림 그리면서 나와 친해졌다.  모든 것을 다 잊고 15 년 간의 펠릭스와 쌓은, 그 많은, 은밀한, 행복한 순간들을 추억했다. 황홀한 애도였다.

    그림은 맨 마지막에 펠릭스의 목에 목끈을 그려주는 순간 완성되었다.


     
     
    펠릭스 1 주기 1 주일 전에 그림이 끝났다. 그림을 끝마치자마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예전에 쓴 펠릭스에 대한 글을 다시 읽었다.  펠릭스가 죽었을 당시 썼던 글들과 옛날 글들을 다 한 파일에 모았다. 그림이 글의 숨을 뚫어주어서인지 글을 읽고 정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펠릭스의 삶---우리 가족과의 만남에서부터 죽음까지--을 짧은 글들로 정리를 하려 한다. 여러 사건/사람에 대한 애도가 엉클어져 있던 내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의 시작이다. 그렇게 '위묘전'을 완성하면 나는 펠릭스와의 사별이 주는 슬픔의 무게에서 자유로워지고, 나의 마음에는 펠릭스와 함께 나눈 아름다운 순간들의 기억으로만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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