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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발, 사랑, 공감 (시부모님)
    부모님 이야기 2021. 7. 8. 15:51

    브러셀의 아침 6 시.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한 시간 전에는 이렇게 앉아 있었다가…


    유리창에 반사되는 아침 햇살이 예뻐서 자리를 바꿔 앉았다.
    저 반짝임은 얼마 지속되지 않았지만…


    도시 중심가인데 새 소리가 청명하다.
    비둘기떼가 날개를 퍼덕이며 힘차게 하늘로 솓더니만 다 뿔뿔이 흩어진다.
    한 시간 전에만해도 차 소리가 전혀 안 들렸는데, 조금씩 트럭 소리,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도시가 기지개를 켜며 깨어날 때 나도 함께 깨어 있으면서 움직임, 소리, 차가운 공기 등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음이 너무도 행복하다.

    오늘은 하루가 맑을 것이라는 예보가 내렸다.
    바로 다음날과 당일의 기상 예보는 꽤 정확한 편이라 아마 오늘 맑고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게 될 것같다.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오늘 아버님을 병원으로 모시고 간다.
    엑스레이를 찍어야한다.
    아마 즐겁게 병원을 다녀올 것같다.
    어제와 오늘은 아주 다른 날일 것이다. 그러기를 바란다.

    ——————————————————-

    어제 이른 오후 부모님께 갔다.
    어머님은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전에 즉시 엑스레이를 찍어야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졌는데 ‘앰뷸런스’는 이틀 전에 예약을 해야하기에 1 시간 넘게 걸려 다섯 군데 전화를 했지만
    앰뷸런스를 잡을 수 없었단다.

    “어머니, 빠삐가 왜 앰뷸런스를 타셔야해요?”

    “일반 택시는 탈 수가 없으시니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하거든.”

    “브러셀에는 휠체어 택시가 없나요?”

    “그런 게 있어?”

    에릭이 검색을 해보니 브러셀에 등록되어 있는 1000 개 정도의 택시 중에 90 여개는 휠체어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단다.
    어머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매사, 모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알면 간단하고 쉬운 일이 되는 법,
    아버님 수발을 들기 시작한 어머님은 모르는 게 많았고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 1 년간 아버님이 병원을 가실 때마다 이동 문제로 받으셨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안스러웠다.
    시동생과 시누이가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휠체어 택시라는 게 있는지를 몰라서 일반 택시를 사용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몸을 구부려서 택시를 타시려니 얼마나 아프셨을까…

    시동생과 시누이는 부모님을 일주일에 한번씩 꼭 방문하여 그때 그때 나름 열심히 돕고 있다.
    그러나 단발성 도움은 잠시 숨을 돌리게 해줄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시름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한 집에 거주하면서, 아니면 매일 출근해서, 단순하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잘한 임무의 연속인 수발의 일부를
    —-예를 들어 점심 식사 수발, 오후 목욕 수발 등 시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담당해주는 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텐데, 현재 자식 중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친 어머님은 아버님께 짜증을 내고,
    통증으로 시달리는 아버님은 어머님의 차가운 태도에 상처를 받고
    아버님은 어머님의 차가움을 비판하고
    잠 못자면서 수발을 드는 어머님은 아버님의 언사에 상처를 받고,
    그렇게 악순환은 계속된다.

    옛날 같으면 다툰 뒤에는 몇 시간이라도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 있었지만
    수발의 상황에서 그런 격리는 가능하지 않으니
    서로 마음의 상처를 짊어진 상태에서 수발이 진행되고, 그러다보니
    온 집안에 부정적인 기운이 가득하다.

    어제, 나는 쟈클린 이모님을 모시고 나가 식사를 하고 오느라 저녁 내내 집을 비웠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집안 분위기가 무거웠다.

    어머님은 오후보다도 더 많이 피곤해보이셨다.
    남편이 휠체어 택시를 주문하고, 아버님 옆을 지키면서 화장실 수발을 다섯번 들어드리고, 아버님과 말벗을 해드려서 어머님의 힘을 덜어드렸지만
    약을 드릴 때, 물을 가져올 때, 말을 건넬 때, 매사에 어머님은 지친 기색으로 기계적으로 했다.
    그렇게 지친 어머님도, 그런 어머님의 눈치를 보는 아버님도, 다 가여웠다.

    밤 11 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와야했다. 우리가 떠나고 나면 두 분이 사이의 분위기가 어떨까 생각하니 영 마음이 불편했다.
    아버님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어머님의 피곤과 짜증도 사라지지 않을텐데…

    아버님께 굿나잇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엣날 나의 친정 아버지 수발을 들 때의 마음이 되살아났다.
    아버님을 양팔로 꼭 껴안으면서 아버님의 (대)머리와 양 뺨에 뽀뽀를 퍼부었다.
    아버님은 예기치 못했던 며느리의 스/킨/쉽에 적지 않이 놀라셨지만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아버님, 너무 아프시지요? 아프신 게 느껴져요. 얼마나 힘드실까…”

    라고 했더니 아버님이 “고맙다”라고 하신다.

    뭐가 고마운 거지?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인가?
    의아했지만, 아버님의 가슴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마사질르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엑스레이만 찍는 건데요.”
    라고 하니 아버님은

    “혹시 나를 병원에서 잡아두면 어떻게 하지? 난 병원에 혼자 있기 싫어. 쟈닌도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다가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잖아.”

    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쟈닌은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병원에 그냥 붙잡혀 있었지만, 아버님은 엑스레이만 찍는 거에요.
    며칠 후에 결과 나올 거고, 뼈가 부러지신 게 아니니까 걱정할 일은 없을 거에요. 만약 아버님을 붙들어놓겠다고 하면 우리가 싸울께요.
    우리가 아버님 구해줄테니까 걱정마세요!!”

    (아버님 불안감을 진정하기 위해 아무 소리나 막 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랑 에릭은 나한테 너무 많이 베풀어준다.”

    나는 이번에는 아버님의 손을 잡고 살살 쓸어드리고 뽀뽀를 하면서 말했다.

    “엥? 저희가 뭘 했다고요?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이제부터 진짜 잘해드릴께요. 그러니까 아버님, 오래 사셔서 우리 효도 받으세요.”

    아버님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만족감의 미소를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진지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다시금 장난스러운 ‘대머리 키스’를 했다.

    쬬옥~~

    “아버님, 너무 걱정하지 마요. (쬬~~옥)
    아버님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쬬~옥)
    우린 그게 무엇이든 찾아서 해드릴게요.” (쬭쬭쬭)

    아버님이 하하하 소리내어 웃으셨다.

    “고맙다. 너희들이 그럴 것이라는 거 나는 이미 알고 있어. 고맙다.”

    나오는 길에 부엌에서 어머니께 정중하게 몸을 숙여 꼽인사를 한 뒤 외쳤다.

    “어머니이이이!!!!! 리스펙트! 리스펙트 합니다”

    어머님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지만 내 행동이 우스꽝스러운지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어머니, 존경합니다! 훌륭하십니다.
    이 어려운 일을 일년 동안 혼자 해오셨다니! 어머니,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머님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인하셨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선택권이 없어서 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세상에 선택권이 없어서 하는 일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은 것도 선택이에요!
    예를 들어, 어머님은 병중의 아버님 두고, 젊은 남성이랑 연애를 할 수도 있었어요! 그런 선택 안 하셨잖아요!!!”

    망측한 소리에 어머니가 하하하하 웃으시면서

    “나는 가끔 남편의 목을 조르고 싶을 때도 있어!” 라고 하셨다.

    “어머니, 그건 정상이에요!
    저는 몸이 건강하고, 집안 일 잘 도와주는 에릭의 목을 조르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엇? 어머님 아들 목을 조르고 싶다고 하고 있네?”

    어머님이 실눈이 되어 웃으셨다. 나도 웃었다.

    ———-

    11 시 반 경 집을 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길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말없이 걷고 있던 중,
    에릭이 말했다.

    “우리가 아버님 (나의 친정 아버지)을 모실 때는 많이 웃고 살았었지?
    그 생각이 나네.”

    “응. 그립다. 그 시절이. 에릭, 고마워. 그 때 나 많이 도와줘서.”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당신이 나를 도와줬기때문에 우리가 많이 웃을 수 있었어.
    딸이 남편 눈치 보면서 수발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시니까,
    그리고 사위가 진심으로 당신들을 아낀다는 것을 아니까 아버지랑 엄마도 마음 편히 웃으실 수 있었고.”

    나의 칭찬이 쑥스러운지 남편이 말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뭐.”

    남편이 잠시 후 말했다.

    “당신이 오늘 내 부모님께 하는 거 보고 하나 배웠어.”

    “응? 뭘 배웠다고?”

    “당신이 아버지한테는 아버지의 고통을 완전히 인정해주고,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가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어머니한테는 어머니가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이해하고 존경한다고 표현하고,
    뭔가 바꾸려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두 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보았어.”

    “오…그래? 듣고보니 그런 거네?”

    “그래서 오늘 당신이 이제까지 매일 했던 말들이 처음으로 무슨 소리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그들의 마음을 공감해주라는 거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 것같아.
    하루 종일 무거웠던 집안의 분위기가 말 몇마디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진정한 공감의 힘이 무엇이라는 것을 실감했어.
    그래서 앞으로 내가 아이들이랑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좀 왔어.”

    “잘됐네!”

    우리는 이런저런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삶의 여러 무거운 문제들은 (아버님이 겪으시는 고통, 어머님이 겪으시는 수발의 고통, 그들을 온전히 돕지 못하는 자식으로서 우리가 느끼는 미안함)
    사라지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감’이라는 아주 단순한 노력이야말로 그 무게를 가끔씩 가볍게 해주고,
    삶을 살만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임을 새삼 확인한 하루였다.

    ———


    (테라스에서 두 시간, 휘르륵~~~글쓰기 마치고, 이제 아버님 모시고 병원에 가러 나갑니다~~~
    굿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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