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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동네 코로나바이러스 소식
    스치는 생각 2020. 3. 14. 13:20

    오래 업데이트 못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한국이 고생을 하는데 태평양 건너 살면서 신변잡담 끄적이고싶지 않더군요. 이젠 미국도 코로나 사태로 난감한 상태에 직면했습니다. 한국의 코로나사태에 대응법에 대해 코웃음치던 사람들의 큰 코가 납작해졌지요. 

    코웃음에 대해서...

    제가 사는 곳은 미국에서 세번째로 코로나비아러스 확진자가 나온 곳이에요. 1 월 26 일이었어요. 뉴스를 보고 놀랐어요.  '확진자가 나왔는데, 우한을 방문한 사람이며, 직접적인 컨택을 했더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은 낮다'는 식으로, 바이러스 감영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는 태평양 너머 아시아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렸으니 말이죠.

    며칠 후에 소셜미디어에 어떤 이의 문자를 캡쳐한 사진이 돌기 시작했고 제 지인들을 통해서 저도 그걸 받았는데... 

    '확진자는 동네의 커뮤니티 컬리지에 유학을 하는 딸을 방문한 한 부/모 (엄마인지 아빠인지 모름, parent 라 함)로 그/녀는 우한에서 왔음. 그의 이동 노선은 유명 쇼핑몰, 중국 마켓, 쇼핑 몰의 00 식당이다. 현재 그는 이 동네의 대형 병원 두 개중 한 곳에 입원 중이다' 

    라는 내용이었어요. 문제의 중국 마켓, 컬리지가 저의 집에서 5 분 거리에 있고, 쇼핑몰도 20 분 거리내에 있고요. 한국에서라면 확진자의 모든 move 가 다 공개되고, 그가 갔던 모든 지역에 방역팀이 파견되어 철저히 소독한다고 들었기에 저는 이곳도 그런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헐....

    아니요.

    며칠 후에 문자는 루머라는 공식 발표가 나왔어요. 확진자는 우한에서 온 50 대 남성이며 병원에 입원 중이나 그를 통한 감염의 사례의 증거가 없으니 걱정말라.

    걱정말라면서 그렇다면 그 사람의 상태는 어떠한지, 그가 접촉한 사람들은 몇 명인지, 그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이야기해주지 않는 발표문. 

    한국의 훌륭한 대응방식을 기사로 접하면서 나름 '눈이 높아진' 저는 '그렇다면 적어도 어느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정도는 이야기해줘야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러나 제 주위의 미국 사람들은 여전히 눈이 낮은 건지, 눈을 가리고 사는지, 그런 기사를 읽고 만족하더이다. 어떤 이들은 '그냥 감기 정도의 문제인데 미디어가 가짜 뉴스를 만드는 것'이라고까지 했어요. 기본적인 건강 수칙만 지키고 살면 되는데 왜 그렇게들 과민하게 반응하는지...식의 배부른 소리들.

    (사실, 저희 동네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만하긴 해요. 이곳은 인구 조밀 지역이 아니고,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주 적어요. 그래서 엘리베이터, 버스, 지하철이 다 잠재적인 위험 공간이 되어버리는 대도시와는 아주 다른 조건이지요.)

    저는 한달 여 전, 마스크 대란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인들께 마스크를 구해서 보내줄 수 있을까 싶어서 온라인으로 마스크를 주문하려고 들여다보았어요. 그런데 완전 다 sold out!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어요. 최근에는 벨기에의 암 수술을 한 지인과 폐 기능이 30 퍼센트로 고생하는 지인이 벨기에에서도 마스크를 구할 길이 없다고 저에게 도움을 청해서 다시 들여다보았는데, 여전히 구할 수 없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너무 너무 비싸지만 그래도 구입 가능한 마스크를 발견하고 너무 기뻐서 클릭하려던 찰라, 상세 정보를 읽어보자 하고 살펴보았더니, 그 마스크가 우한에서 온 것인 거에요. 구입자 후기의 평도 아주 나쁘고. 품질이 낮은 것같아서 구매하지 않았고요. (벨기에 친지들은 아예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서 마스크가 있던 없던 외출은 금지하는 게 가장 바람직 한 것같다며)

    요 며칠 전부터 미국도 깨어나기 시작했어요.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지요.

    현재 캘리포니아에는 246 명의 확진자, 6 명 사망, 그리고 제가 사는 지역에는 9 명의 확진자가 있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한국처럼  테스트를 하게 되면 숫자는 엄청 뛸 거에요. 오늘부터 제가 사는 카운티의 학교를 닫았고, 500000 명의 학생들이 2 주간 학교를 안갑니다. 대학들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고 캠퍼스는 닫았고요.

    슈퍼마켓의 음식들은 다 동이나고 화장지도 다 없어졌어요.

    저는 일주일 전 정기적으로 생필품 사러 나갔다가 마켓의 물건이 동이난 것을 보고 충격먹었어요. 비누도 없고, 휴지도 없고,...사재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해서 사려는 건데.... 그래서 3 시간 동안 이 가게 저 가게 돌면서 실망하고, 또 실망하고...그러다가 멀리 떨어진 큰 슈퍼에서 간신히 샀어요.

    어제는 식재료 사러 자주 가는 가게에 갔는데, 제가 남편더러,

    "이 가게 뭐야? 코로나 와중에 가게 리모델링했네?"

    했어요. 주차장에서 보는데 가게가 훤~~ 하니 멋있는 거에요. 알고보니 큰 유리문을 가로막고 있던 생수 박스들이 다 팔려서 유리창이 훤하니 가게가 다 들여다보여서였어요. (생수는 사재기할 필요가 없는데...왜?!!)

    남편과 식재료를 사려는데.... 스파케티도 하나도 없고, 소스도 없고, 캔 음식들도 하나도 없어요. 평소에 이런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아주 비판적인 남편도 어제 좀 놀랐어요.  식재료 사러 나왔다가 빈손으로 가야할 판이 되었으니까요. 당장 아침에 먹을 오트밀도 없는데, 오트밀 섹션도 아주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으니 놀랄만하지요.  

    결국 비/가 오/는/데 (!) 다른 큰 가게로 가서 쇼핑을 했어요. 우리도 온 식구가 많이 먹는 nuts 들 두 봉지씩 사고, 각종 콩들을 샀어요.  계산 하려고 캐시어 앞에 줄을 섰는데 카트 두개에 꽉꽉 채워 담아 사가는 사람들이 앞에 서 있더군요. 우리 카트는 아주 간단. 그들에 비하니 우리는 위풍당당 우람튼튼한 스모 선수 옆에 선 두 살짜리 기저기 아기같이 느껴졌어요. 이러다가 정말 난리나서 우리 굶는 게 아닌가...쓰잘데 없는 걱정이 잠시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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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시댁에 전화를 드렸어요. 식당, 학교 다 닫았다고 해요. 슈퍼만 여는데 그것도 주말에는 닫는다고. 어머니도 한국 뉴스를 보고 있는데, 한달 전만해도 한국이 참 큰 문제구나 하셨는데, 요즘은 한국은 정말 잘하고 있구나 하고 부러워하세요. 으쓱으쓱~~~한국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뉴스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전해주면서 자랑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어서 힘들었다지요. 

    이스라엘 어머니랑도 통화했어요. (현재 85 세). 제가 어머니 소식이 궁금했던 게 어머니가 큰 여행을 하셨거든요.

    참 대단하신 게 제가 작년에 뵈었을 때 균형잡는 게 힘들다고 하셨는데, 3 주 전에 브라질 상파울로에 가서 웍샵을 하셨어요. 웍샵 끝내고카니발 사진을 보내오셨는데, 미녀들 옆에서 같이 춤을 추고 계시더라는... ㅠ 이후에 사진들 보니 아르헨티나가서 탱고 공연 보시면서 또 들썩들썩, 흔들흔들... 이스라엘 오라버니께서 1 주일 휴가내서 엄마 보러 왔다며 아들과 함께 즐겁게 여행하는 사진들을 보내주었어요.  이스라엘에 귀국하자마자 2 주, 자가 격리 중이라십니다. 이스라엘도 학교니, 사무실이니, 가게니 다 닫았다고 해요. 저는 어머니께서 아버님 돌아가신 뒤 혼자 사시는데 거기에 또 자가 격리시라니..하고 걱정을 했는데, 왠걸, 어머님의 'It's a horrible time. But it will pass!' 라는 메시지에 그녀 특유의 긍정적 태도가 배어 있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벨기에의 89 세 쟈닌 이모님이랑도 연락을 했어요. (챙겨드려야할 노인들이 많아요)  이모님은 혼자 되신지 15 년이 되었는데, '행복한 과부'라는 모임의 주체로서 참 즐겁게 사세요. 혼자 여행을 자주 다니셨고, 최근까지 팔이 뿌러져 기브스를 하고 계시고, 무릎이 아파서 잘 걷지 못하시고, 한쪽 눈이 실명을 했음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밖으로 나가 걸으셨읍니다.  젊은 사람들로 붐비는 쇼핑몰, 핫 한 거리들, 박물관 미술관을 누비고 다니셨지요.  이모님은 젊은 사람들이 빨리 걷다가 부주의로 자기와 부딛히는 게 두려워서, 자구책으로 맹인용 하얀 지팡이를 들고 탁, 탁, 탁 치면서 다니세요.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로 브러셀 레스토랑이 닫는다는 소식에 잠시 낙담했는데, 그래도 celebrate 해야지! 하시면서 레스토랑이 닫는 날, 혼자 나가서 식당 닫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시고 오셨답니다. 

    균형을 못잡으면서도, 브라질의 미녀들 옆에서 춤을 추는 이스라엘 어머니, 부러진 팔, 기브스를 한 채,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면서, 맹인용 지팡이를 탁탁 두드리면서, 레스토랑에 가서 혼자 맛있는 식사를 하는 자닌 이모님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흐믓한 미소를 짓게 되고, 뭔가 긍정적인 기운이 살아나는 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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