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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묘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한 할아버지와의 만남
    부모님 이야기 2020. 2. 21. 16:01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지 생신이다. 엄마와 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

    주중 아침의 묘원은 늘 한적하다. 날씨가 화창했고 묘원의 꽃들이 아름다웠다.

    지난 주말에 왔을 때 아버지 묘소의 화병에 꽃은 꽃들의 일부는 아직도 싱싱했다. 물을 갈고 새로 사온 꽃을 꽃았다.

     

     

    엄마와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다. 

    뒷산에 산책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아버지 묘소를 찾아와 이렇게 예배 드릴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등을 내리쬐는 따뜻한 햇살이 따갑게 느껴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에 가려고 차로 갔는데 차 위에 새 한마리가 있었다. 옛날에 읽은 어떤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이 새를 보고 '아버지!' 하고 마음으로 오래 전에 죽은 아버지를 부르던 장면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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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타려는데 어떤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그는 우리가 묘소에 올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이다. 

    아버지 묘소에서 20 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묘소를 찾아오는 그는 꽃과 인형, 야구 모자, 화분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묘소 앞에서  기도를 하고, 묘소를 내려다보면서 두런두런 말을 하곤 했다. 멀찌감치서 그의 모습을 보고 엄마가 '저분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같이 보인다' 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듯이 그도 우리를 바라보았나보다. 평일 아침 시간에 묘소에는 그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을 때가 많기때문에 가끔 마주치는 은발의 할머니와 나이 지긋한 딸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반가이 인사를 나누고 내가 물었다.

    "우리가 올 때마다 만나뵙네요.  당신은 묘소에 매일 오시나요?"

    그는 매일 온다고 했다. 지난 1 년 반 동안 못온 날이 열흘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누구의 묘를 찾아오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의 손자의 묘였다. 

    "생후 6 주부터 죽기 전날까지 나는 제 손자를 를 돌보았습니다.  그의 부모가 직장일로 바빠서, 어렸을 때는 매일 데리고 있었고, 커서는 아침, 오후 학교에 데리고 가고 데려오는 일을 제가 했습니다. 그는 저의 자랑이고 사랑이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자님의 죽음이 급작스러운 것이었나요?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이 있으셨나요?"

    그말에 죽음의 아픔이 그대로 살아나는지, 그의 주름투성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이그러졌다. 

    아마 다른 장소에서라면 나의 질문은 아주 무례했을 수 있었고, 그는 대답을 회피할 수 있었으나, 우리는 이미 묘지에서 만난 애도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는 사이였다. 그는 나에게 상세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제 손자는 16 세의 나이에 사랑의 실패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자 친구가 상처를 주는 말을 하면서 절교를 선언했는데 큰 상처를 받은 것이지요.. 제 손자는 190에 100 킬로가 넘는 거구였고, 제가 만나 사람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였지만 마음은 여렸습니다.

    저는 제 손자의 죽음이 그 아이의 여자친구를 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아이도 어린 아이였으니까 생각없이 말했겠지요. 그러나 만약 그 아이가 그렇게 잔인하게 끝내지 않았더라면 제 손자가 살아있지 않을까..라는 안타까운 생각은 들어요. 손자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18 세이겠지요. 너무 그립습니다."

    그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다. 다행인 게 있다고 했다. 손자가 자살하기 전날, 여늬때처럼 그를 학교에서 픽업해서 집에다 데려다주었는데 헤어지기 전,  그는 손자에게 "I love you, Jack!" 했고, 손자도 그에게 "I love you, grandpa" 라고 했단다.

    "내가 손자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말이 'I love you' 라는 사실에 나는 위안을 받습니다.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의 눈은 눈물이 촉촉해졌고, 나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었다.

    그가 나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물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또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그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모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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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에 엄마 방에서 쉬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에릭이 엄마께 보낸 꽃이 배달되었다.  "아부지의 92 세 생신을 축합니다" 

     

    나는 카톡에서 친구가 키운 수선화 꽃의 사진을 받았다.  '섬세한 아름다움과 숨은 듯 살짝 풍기는 향을 느낌 아버님을 추억합니다' 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엄마는 사위의 꽃을 받고 기뻐하고, 나는 친구의 꽃사진을 받고 기뻐했다.

    엄마와 함께 아버지도 기리고, 할아버지 친구도 사귀게 되고, 꽃선물을 받은 아버지의 생신, 참 복된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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