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유서 (2)
    스치는 생각 2020. 2. 18. 05:26

     

     

    올해 나는 아이들에게 준 크리스마스 카드 봉투에 '유서와 같은 편지'를 넣었다. (진짜 유서는 이미 검토가 끝나 변호사에게 보내졌다)

    아마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응급실에 다녀온 뒤에 착잡한 마음이 있어서였는지도, 아니면 바로 이틀 후에 브러셀행 장거리 비행기를 타야한다는 사실에 부담이 느껴져서였는지도 모른다.

    평소에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내가 후회할 일이 무얼까?' 하고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응급실에 다녀온 다음날 나는 마치 내가 추락하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듯한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혼자 추락을 상상할 때마다 느꼈는데, 나는 설사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내가 당장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아비규환 속에서 그리 '당황하지'는 않을 것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당해봐야 아는 상황이겠지만 이제까지 내 삶의 전력을 살펴보면 내가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아주 침착할 것이라는 게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그건 내가 대단히 신앙심이 깊어서, 또는 죽음에 초연해서가 아니라내가 위기 상황에 판단을 빨리 하고 결정을 빨리 내리는 스타일이라서이다. 차갑게 생각해서 어차피 내가 노력해서 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빨리 체념하고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분명 가슴이 미어지게 아플 것이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나만 바라보고 사는 팔순의 엄마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드리는 게 너무 미안해서 울음이 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어린' 아이들을 두고가는 것이 안타까울 것이다.  나는 늦게 결혼했고, 그래서 아이들이 아직 대학생이다. 다 큰 아이들이지만 내 눈에는 아직 어리다. 내가 있든 없든 다 잘 알아서 살아가리라 믿지만 그래도 성년, 장년이 되기까지 부모가 같이 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나를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아이들의 삶의 여러 도전과 고난의 상황에 'everything will be ok~' 하고 느긋한 철학을 심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에게 쓴 유서는 그런 가상의 안타까움을 덜기 위해 쓴 글이었다.

    프린트해서 크리스마스 카드 봉투 안에 넣었다.

    ----------------------------

    카드는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교환하는 유일한 선물이다. 물질적 선물 교환을 '폐지'한지는 몇 년이 되어간다.

    비싸지 않더라도 작고 재밌고 의미있는 선물을 사서 주고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다. 선물 교환을 위해 온 가족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사들이고, 포장지, 박스 쓰레기를 버리면서 죄책감 느끼고, 마음에 안 맞으면 반환하기 위해 차가 넘쳐나는 연말연시의 주차장을 들낙거리고 긴 줄에 끼어서서 기다려한다는 게 상상만 해도 스트레스가 온다.

    어쩌면 내가 늙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늙음이 주는 축복이 무엇인가--원하는 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고, 그러면서 마음 편한 것이 아니겠는가?

    '늙은' 엄마는 아이들과 상의해서 선물 교환을 폐지하고 선물 대신에 카드만 교환하기로  했다. '메리크리스마스! 로 시작해서 '알러뷰'로 끝나는 형식적 카드 말고, 정성들여서 편지를 쓰자고 했다. 아이들은 순순히 동의했다.  

    이런 제안에 '반항'을 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남편이었다. 자기처럼 글쓰기 싫어하고, 뭐든 간략하게 쓰는 사람이 어떻게 카드의 한 면을 채울 수 있겠냐고 울상이었다.  쯧...나보다 3 년 어린 남편은 아직 '하기 싫으면 안해버리고 마는' 경지의 늙음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카드 쓰기에 동참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에 딸 아이가 해준 이야기. 친구들과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길에 보니 아빠가 식탁에서 카드를 앞에 놓고 가만히 앉아 있더란다. 뭐하냐고 물었더니 '바위에서 피를 짜내고 있다' 라면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더란다. 아침 식사 잘 하고, 공원 산책까지 마치고 3 시간 후에 돌아와보니 아빠가 그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더라나. 아까의 카드는 여전히 채워지지 못한채 식탁에 놓여있고...(그 카드는 나에게 쓴 카드였다. ㅠ)

    크리스마스 메뉴는 몇년 째 치즈 퐁듀 이다.

    식사 후. 왁자지껄하니, 웃으면서 카드 주고 받는 것은 선물교환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각자 카드를 읽는 순간 거실은 조용해진다. 카드에는 평소에 못했던 감사와 사랑의 표현은 물론 매해 같이 겪은 특별한 사건과 경험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추억되었다. 좋은 생각, 꿈, 미래, 기원들이 담겨 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고마워' 말하기도 하고, 다가가서 껴안기도 한다. 따뜻한 순간이다.

    ----

    올해 크리스마스날 쓴 유서에  당장 내가 아이들을 떠나게 된다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 또는 꼭 해줘야한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들을 적었다. 평소에 설교같아서 안했던 이야기들도 있었다. '경천애인'의 주제 (종교와 이웃사랑, 봉사의 생활화) 등 굵직한 주제와 함께 도박, 돈 꿔주고 받기, 보증에 대한 나의 입장을 썼다. 오빠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쉽게 처리할 수 있게끔 세부적인 장례절차에 대해 이야기했다.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에 구입이 완료된 나와 에릭의 묘소에 대한 정보더 유서에 적어주었다.

    "할아버지 묘소 옆에 우리 묘소를 구입해놓았다. 관 하나 놓일 그 작은 땅덩이가 너희들이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고향이 되길 바란다." 

    맨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룰루, 랄라, 너희들이 어렸던 아주 옛날에 내가 갑자기 몸이 좀 안좋졌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독일에 사는 혜지언니가 미국의 나에게 '팜펨아, 혹시라도 너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너희 아이들을 내가 돌봐주마' 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했어. 아마도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불길한 가리거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조심스러웠을 거야. 나를 위해 나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고 서약을 하는 혜지언니의 우정이 나에게 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단다.

    우정, 사랑으로 의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인데  나는 감사하게도 그렇게 가치관이 비슷하고 의리가 있는 친구들이 좀 있다. 너희가 아는 사람도 있고, 너희가 잘 모르는 사람도 있고,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도 있고 한국을 비롯,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러나 나는 그들 모두가 너희가 신뢰할 수 있고, 언제고 연락할 수 있고, 도움과 조언을 청할 수 있는 인생선배들이라고 확신해. 이 아래에 그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두었으니 잘 간직하여라. 그 무엇보다도 나는 모쪼록 너희들도 나처럼 친구복을 많이 받기를 기원한다.

    나는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그저 마음에 아름다운 스토리 몇 개를 간직한채...."  라고 생각해왔어. 그런데 이미 나는 너희 덕에 아주 아름다운 스토리를 간직할 수 있게 되었어. 내 삶을 아름답고 의미있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사랑해."

    ----

    밥 잘 먹고, 카드를 교환했다. 

    여늬 때와 마찬가지로 카드를 읽는 동안은 아주 고요했다. 내 카드를 읽다가 유서성 편지를 발견하고 아이들은 잠시 놀랐다.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상상에 마음이 물러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서라는 글 안에 웃긴 이야기도 좀 있고, 평소 엄마가 하던 농담, 잔소리, 사랑표현과 그닥 다른 게 없으니 금새 적응이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을 하고 뜬금없는 생각들을 나누었다. 엄마 아빠는 캘리포니아에서 살다 죽을 것이냐 (그걸 누가 아냐 ㅠ),  보증이란 게 정확히 무엇인가, 미국과 한국은 보증이란 게 좀 다른 것같다 (사실이다),  도박은 하고 싶지 않지만 라스베가스에서 포커 게임은 경험삼아 꼭 해볼 것이니 그건 엄마도 알고 있어라 (그래, 맘대로 해라),  묘지가 얼마더냐 (4000 불이다), 아니 그, 묘지에 유골함이 네 개가 들어갈 수 있다고? 우리 온 가족이 다 들어가도 재밌겠다, 경제적이겠다 ㅠ 등등....이상한, 그러나 평소에 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재밌게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과 농담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나는 아이들이 '진짜로' 컸구나 싶었다. 그들은 '엄마, 죽지마! 엄마 죽는다는 소리는 하지도 마!' 하는 대신 (잠깐 하긴 했다), , 죽음과 삶의 경계를 나누고, 우리 삶에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 자체, 죽음 직후,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뭔가 흐믓했다. 아주 옛날, 한국의 무덤에서 뛰어 놀던  여섯살배기, 네살배기 아이들의 순수함이 성년이 된 아이들의 마음에 회복된 것같아서 기뻤다.

     그때 쓴 글--무덤과 놀이터'

     

    무덤과 놀이터

    오래 전 (2003 년) 아이들과 한국에 도착한 날, 짐을 풀지도 않은채 아파트 뒷산의 약수터에 올랐다. 운동 기구 옆에서 부모님과 한 아파트에 사는 대학 동창을 만났다. '한국에 언제 도착했니?' 반가워하며 묻는..

    famfem.tistory.com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