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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타 할머니'
    부모님 이야기 2019. 12. 19. 14:40

    엄마와 같이 자원봉사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꾸러미들을 검사하고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엄마가 휴식시간 20 분 빼고는 장장 네 시간을 서서 일을 하셨습니다.  (참고로 엄마보다 20 년 젊은 제 친구들 중에는 힘들어서 두번 휴식한 사람도 있습니다.)

    (S 양, 홍삼액 파워가 대단합니다~! 땡스!)

    엄마의 건강은 아슬아슬하고, 몸을 움직이시는 게 예전보다 많이 유연하지 못하고, 힘도 많이 떨어지셨으나, 매일 열심히 운동하고, 산책하고, 기도하시면서 오히려 3 년 전보다 건강이 좋으십니다. 그게 자원봉사 하면서 확실히 증명되었습니다.

    또 하나, 엄마는 영어만 쓰는 제 친구 10 명과 어울려서 일을 하시는 게 불편할 수 있음에도 용기를 내서 함께 가셨어요.(엄마는 영어로 미국땅을 정복하고 말 것입니다~~!!!)

    내용물도 다양하고 포장지도 다양한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포장하면서 참 기뻤습니다.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도 안 만들었는데 제 마음은 캐롤리 내내 흐르고 크리스마스 감성에 흠뻑 젖었습니다. 엄마도 마찬가지. 집에 돌아온 뒤에도 휴식을 하지 않고 집안 일을 하시고, 찬송을 부르시더라니...엄마, 85 세 맞으신가?

    엄마가 문득 말씀하셨어요. "옛날 생각나니?  네가 선물 택배로 보내줘서 내가 '산타클로스 할머니'가 되어었던 거....'

    아..그래...그런 일이 있었지.

    그동안 삶이 너무 바빠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일이에요. 

    2013 년에 오빠가 떠나신 해의 일.

    오빠 재산정리 마친 뒤, 엄마와 아버지 두 분을 한국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 제가 너무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었어요. 엄마는 너무 슬퍼서 방에만 가만히 앉아 계셨어요. 하도 꼼짝않고 앉아 계셔서 결국 허리와 척추에 문제가 생겨 이후 오래 치료를 받아야하게 되셨지요. 엄마는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교회도 안 나가셨어요. 병원에 가는 일, 매일 아버지를 위해 약수터에 가기, 아파트 주변의 재래시장과 작은 슈퍼에서 장을 보는 것--살기 위해서 꼭 해야할 일들을 위해서 나가는 게 고작.  

    '신열이 따라 그냥 하늘나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버지를 지켜야한다'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시는 고마운 엄마.

    전 엄마 아버지와 거의 매일 화상채팅을 했어요.  전 그게 두분의 삶에서 거의 유일한 '기쁜 순간'임을 알고 있어서 아무리 바빠도 채팅 시간을 냈지요. 대화를 나누고 끊을 무렵이면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요. 채팅이 끝나는 순간, 두분은 각자의 방에서 조용히 혼자 슬픔과 씨름할 것을 알기에.  곧 크리스마스, 새해가 되면 아들이 더더욱 그리우실텐데...가엾어라.

    엄마랑 채팅하면서 알게된 사실--엄마는 본인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편하시다 하셨어요. 

    아파트 청소부 아줌마,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 공사를 도와주신 박사장님, 야채 가게 아줌마, 생선집 아저씨,  달걀 파는 아저씨, 생필품  사기 위해 드나드는 지하 슈퍼. 동네 병원의 의사 선생님,  간호사님, 과일 행상 조집사님....그러고보니 엄마와 대화에서 주로 언급되는 분들은 제가 잘 아는 과일 행상 조집사님과 의사 선생님 말고는 몇 번 뵌 적은 있으나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엄마의 '이웃'들이었어요.

    엄마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참 열심히 산다' '달걀 아저씨는 장로님이라더라' '생선 가게 아저씨는 얼마나 잘 웃는지 몰라' '지하 슈퍼 아줌마는 내가 무거운 거 들지 말라고 다 배달해주려고 해' 조집사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귤도 주고 사과도 주고 그래' '새벽부터 자정까지 내내 그자리에 앉아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전 엄마와 대화를 할 때마다 그 이웃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본인들은 자기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겠지만 그들은 아들을 잃은 한 할머니가 넘어지지 않게 '단순한 일상'이라는 단단하고 안전한 structure 를 세워주고 있었어요.

    물좋은 생선 사고, 샴푸 사고, 채소 사고, 달걀 사고....하는 삶의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상이 엄마가 대인기피증에서 잠시 해방되는 순간이었어요. 엄마는  살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젊은 이웃들의 곤함을 안스러워했고 그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했어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가  본인이 아주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웃들에게 무어라도 베풀고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그렇게 베풀 때 엄마 스스로에게 감사하는 마음, 나누는 기쁨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혹시 웃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선물 꾸러미를 준비했어요.. 작은 백에 장갑, 쵸콜렛, 로션, 선크림, 티, 아이들이 있는 집은 인형, 산타 모자, 슈퍼 아줌마에게는 최근에 결혼한 딸을 위한 핸드백..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작은 선물 백을 만들어 두 개의 커다란 국제 택배 박스에 넣어 한국으로 보냈습니다.

    엄마가 놀라셨어요. 왜냐면 제가 여기저기, 들낙날락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선물을 안 들고 다니는 것으로 '악명'이 높거든요. 이모들, 사촌들, 조카들....한번도 선물을 안했어요.  좀 특별한 경우 말고는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도 선물을 한 적이 없는 것같아요. 저의 아주 모자라는 부분이지요. 전 선물사기를 잘 못해요. ㅠ

    택배 박스가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바빠졌습니다.  엄마는 박스 안에 동봉한 선물백과 포장지에 선물들을 포장해서 들고 나가 전달을 해야했으니까요. 매일 나갈 수 없으니까 계획해야하고, 눈길에 넘어질 수 있으니까 날씨 봐가면서 계획해야고, 다 들고 다닐 수 없으니까 동선을 계획해야하고....엄마는 매일 멍하니 슬픔에 잠겨 있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계획하고 실행해야했습니다.

    엄마는 선물 꾸러미를 배달하면서 기뻐하셨어요. 평소에 호감과 감사함을 품고 있던 단골 가게 주인들에게 주는 서프라이즈 선물이 그들을 얼마나 기쁘게하는가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즐거워진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팜펨아, 네 덕에 내가 '산타 할머니'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고마워하고 좋아하니 내가 기분이 참 좋더라."

    '기분이 좋더라~~!' 는 참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좋은 기분' ---그것은 이웃들이 답례로 엄마께 준 큰 선물이었습니다. 엄마를 웃게 만들어준 선물...

    그렇게 12 월이 바쁘게 지났습니다.

    전 마음이 놓였습니다. 엄마의 '좋은 기분'은 잠깐이면 사라지고, 엄마는 다시금  세상을 떠난 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꼼짝않고 앉아 있을 것이며 세상 떠난 아들이 그리워 애통해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왜냐면, 아무리 아픈 상황에서도 엄마가 누군가에게 --비록 그게 잠깐 스치는 것일지라도--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엄마가 , '산타 할머니' 노릇을 하며 이웃들과 나눈 따뜻한 미소와 대화는 슬픔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던 엄마의 마음을 서서히 녹혀줄 것이니까요.

    이듬해 12 월 초에, 다시금 택배를 보내드렸고, 엄마는 다시금 바쁜 '산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후 아버지의 사고로 한국에 갈 수 없게 되셨습니다.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이제 엄마는 미국에서 '산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산타 할머니'는 남에게 사랑을 베풀 때 그 사랑이 동시에 자신을 치유해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산타 할머니'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의 마음에서는 행복이 힘차게 펌프질 된다는 것을, 그래서 마음이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환갑을 목전에 둔 저도 앞으로 엄마랑 함께 '산타할머니'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찾아보려고 합니다.

    엄마, 건강하셔서, 100 세까지 저와 같이 '산타 할머니'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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