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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톱깎이로 보는 삶
    부모님 이야기 2014. 10. 1. 10:13

    아버지의 손이 예전과 다르다. 손가락 마디가 자주 아프시고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일을 못하신다. 

    마치 어린 아이가 신발 끈을 매는 것처럼 천천히 어렵게 손톱을 깎는 모습을 본 뒤 안되겠다 싶었다.

    미끄러지지 않고 다루기도 쉬워보이는 큼직한 손톱깎이를 사드렸다.




    어느날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손이 굽은 아버지께는 발톱을 깎는 건 손톱깎기보다 더 힘든 일임을 알게 되었다.

    두 분 다 고군분투해온 일이었다. 항상 모든 일을 같이 하시지만 귀 청소나 손톱 발톱은 각자 알아서 하는 일로 되어 있었고, 그래서 각자 안 잘리는 발톱을 갖고 혼자, 따로따로 고생하셨다가 상대방도 발톱갖고 고생하는 거 알고  '아, 당신도 그랬구나....' '당신도 그래요?' 하고 반가워하시더라. 허허.


    못자른 발톱은 안으로 굽어 자르기가 더 힘들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니, 한시라도 빨리 발톱을 자르는 게 필요했다.  손이 굽어 힘의 안배가 안되니까 발톱을 깎는 게 힘드신 것이리라 생각하고 혹시라도 류마티즘 환자가 사용하기 좋은 발톱깎기가 있는가 찾아보았다.


    "Toe nail clippers" 라고 검색어를 쳐 넣으면서 설마 좋은 게 있으랴, 손톱깎이와 발톱깎이가 뭐 대단하게 다를까 생각했다.


    그런데 있었다!

    그리고 종류가 다양했다.

    사용후기들도 수십개가 달려 있는 물건들을 비교해보면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손에 힘이 없는 것도 문제, 마디가 아픈 것도 문제, 손동작이 어눌하여 쉽게 핸들을 놓치는 것도 문제, 발톱이 손톱보다 두꺼우니까 손톱깍이의 날 사이에 끼어넣는 것도 문제, 두꺼우니까 잘 안 잘리는 것도 문제----노인에게는 발톱 하나 자르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더라. 


    리뷰들을 꼼꼼히 읽은 뒤에 모든 문제들을 깨끗이 해결해주는 물건을 두 개 골라 주문했다, 






    열심히 리뷰 읽으면서 발톱깎이 '공동체'에 속하는 기분이 들었고,

    관절염이 있던, 손이 곱았던, 노년이 주는 불편함이 무엇이든가 굴하지 않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다 멋있게 보였다.


    긍정적 사람은 멋지다.


    '내가 이리 늙어서 손이 곱았네...징징....

    자꾸 미끄러져서 힘을 못쓰겠네. 징징.

    손톱이 안 잘리네...징징.

    발톱은 더 힘드네...징징.

    아파 죽겠네....징징

    늙는다는 거 정말 서럽네...징징.

    나 다 살았네...징징...'


    징징 타령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나는 늙었다. 

    힘을 못쓴다.

    손톱도 못자른다.

    발톱은 더 힘들다.

    손이 아프다....

    그러니까 그 문제를 해결해야하겠다!' 

    라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게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며칠 후 집정리 중, 손톱깎이를 하나 발견했다.

    아기용 손톱깎이.

    첫째 아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받아 둘째 아이가 캠핑을 다닐 나이가 될 때까지 잘도 사용했던 것이다.


    아기 손톱은 종잇장처럼 얇아 조심스럽게 다뤄야했다. 

    송편만한 아기 손이 뭉게지랴, 눌러지랴, 

    손가락과 구별이 안되는 부드러운 손톱을 행여나 잘못잘라 아프게할까 잔뜩 긴장해서 아이 손톱을 잘랐었지.




    부드러운 손톱용 아기 손톱깎이에 익숙했던 나,

    이제 부모님의 두꺼운 발톱용 발톱깎이를 찾는 나이가 되었구나. 

     

    아이들은 내가 손톱을 깎아줄 필요 없이 크고 점점 더 독립적으로 되어가고,

    이제까지 독립적으로 잘 살아오신 부모님은 서서히 자식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깎이'들은 내 '중년'의 나이가 처한 삶의 주소를 정확히 보여준다.


    언젠가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그리고 내가 훨씬 더 늙으면---

    저 아가 손톱깎이를 다시 사용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한참 후, 내가 훨씬 더 늙었을 때 나도 부모님처럼 날이 선 듬직한 발톱깎이를 사용하게 되겠지.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게, 감사하다.






    -----------------


    효도 블로그 특성상, 부모님이 한국에 가셔서 다시 엽니다

    진짜 오랫동안 쉬었더군요.


    어머니 아버지는 감사하게도 잘 지내고 계시고, 감밧대, 홧팅, 탱큐 갓, 하시면서 귀향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잘 못 걸으셔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만,

    저는 '징징타파 필로소피'를 주장하는바

    (주저앉아 징징거리기를 거부하는 철학 ㅎㅎ)

    그래, 발이 불편하면 휠체어 서비스 사용하면 된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버지를 휠체어에 실어 보내드렸습니다.




    공항에서 돌아오면서 제가 혼자 우는 모습 못 보겠다고 제 친구가 같이 와줬습니다.

    운전도 해주고, 짐도 실어주고 내려주고,

    제가 울지 않게 옆에 있어주고,

    정말 고마운 친구.





    부모님, 친구들,

    오늘도 건강히 지새시고요.

    오늘부터 제가 자주 자주 효도블로그 업데이트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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