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아이들의 그리스여행
    부모님 이야기 2018. 12. 22. 05:17

    아버지가 편찮으시면서 우리 가족의 삶에 큰 변화라면 가족 여행을 못다닌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서 바빠져서 만나는 게 힘들어서 그런 것도 큰 요인이고, 어쩌다 함께 모여도 주말 여행이든, 여름 방학을 이용한 여행이든 이비 수발로 바쁜 나의 일상을 더 번거롭고 힘들게 하여 내 스스로 삼가하게 되었다.

    여름방학의 경우, 에릭과 내가  여행을 갈 수 있는 시간은  캔사스에 사는 언니가 집에 와 있는 3 주 동안이다  그런데 대학 교수인 언니가 올 수 있는 시간은 캔사스의 대학의 여름방학 기간이었고, 그 시간이 캘리포니아의 우리 아이들의 방학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꼴렛이 북가주의 대학교로 진학한다는 게 확실해졌을 때 에릭이 '애들이 이제 다 집을 떠나니 그 전에 한번 온 가족이 여행을 하면 어떨까' 라고 잠시 생각했으나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아예 접어버렸다. 8 월 중순에 꼴렛이 기숙사를 들어갈 때 이틀이라도 같이 가볼 수 없는 상황에서 무슨 가족 여행을 가리오.

    그대신 에밀과 꼴렛 둘 만 여행을 가면 어떨까? 

    에릭의 제안했다. 그것도 좋겠다 싶었다.  부모랑 같이 다니던 여행, 자기들이 알아서 다니고, 다투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면서 친해지지 않을까?

    (아이들이 많이 싸우던 때였다..)

    에릭과 나는 여행을 같이 가진 못하지만 계획에는 참여해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대신에 여행을 선물로. 졸업을 축하하는 선물로. 몫돈이 들어가는만큼 덕지덕지 의미를 부여해서 본전을 뽑고 싶었다. 

    가족의 의견을 합해서 그리스로 한군데로 여행지를 선택했다.

    에릭이 "오, 그리스, 나도 가보고 싶어!" 한다.

    내가 "난 가봤지~. 그것도 몇 번!"  했더니, 내가 그리스를 가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별다르게 생각지 않았던 아이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를 가게 되니까 그 사실이 더 새롭게 느껴지는지 흥미를 보였다.

    내가 그리스를 몇 번 간 이유가 있었다. 첫번은 친구와 여행을 갔었다. 그 후는 비행기 티켓값을 절약하려고 찾다보니 '텔아비브-카이로-아테네-싱가포르-서울' 이란 복잡하고 번거로우면서 무지무지 싼 티켓을 찾아서 이왕이면 아테네를 더 보자 하고 아테네의 호스텔에 며칠 묵는 일정을 잡아 여행을 했었다.

    아이들에게 1980 년 대 말엽의 그리스 여행 이야기를 하다보니 오랫동안 생각지 않았던 사실들이 생각나고, 마치 옛 앨범을 꺼내보는 것처럼 재밌고, 마음이 포근해졌다. 

    "엄마도 젊은 날이 있었어!"

    라고 나 스스로에게도 믿어지지 않는 그 사실을 피력하면서 

    아테네 ywca 호스텔에서 만났던 사람들,  배 갑판에 누워서 일광욕하면서 미코노스 섬에 갔던 것,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모아둔 듯한 미코노스 섬의 디스코텍,  자기들이 U2 의 친구라고 내세우던 아일랜드 친구들,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에게해의 석양, 돈이 다 떨어져가는 상태에서 델피 신전에 갔던 것....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아이들은 흥미있게 이야기를 듣고 나더러 사진들도 좀 보여달라고 했다. 5 년 전에 이사온 뒤 여러 일이 많이 일어나 자잘한 짐정리가 아직 안 끝나서 내 사진을 찾기가 힘들었다. 유일한 사진 한 장-- 델피 신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 이러고 여행 다녔구나!"

    자기들보다 이미 10 살이 많았지만, '엄마'가 아닌 싱글 여행객인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재밌어했다.

    아이들이 여행을 떠났다. 아테네에서 뭘 봤고, 뭘 했다, 산토리니 섬에 다녀온다, 왔다, 숙소에 문제가 있어 바꿔야했다...등등 소식을 전해왔다. 아버지 수발에 바빠서 답장을 짤막짤막하게 했지만 아이들 사진을 보고 부모님께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우리는 마치 같이 여행을 하는 것처럼 한껏 즐겼다.

    여행 마지막 무렵에 아이들이 델피 신전을 간다고 했다. 

    나는 30 여년 전이지만 내가 델피 신전을 간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1987의 내 생일. 돈이 거의 다 떨어져서 식당 근처의 계단에 앉아 요구르트랑 빵을 먹었다. 거길 가는구나...참 아름다운 곳이지. 

    그런 이야기를 부모님과 주고받았는데 다음날 아이들에게서 사진이 한 장 날라왔다.

     

     

    맨 위가 30 년 전의 나의 사진, 그리고 아이들.

    꼴렛이 여행을 떠나기 전 내 사진을 자기 전화기로 찍어뒀다가 델피에 도착한 다음 에밀과 내가 사진을 찍었던 장소를 탐색해 찾아내 나와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

    "엄마가 여기 없어도 엄마가 같이 있는 것같다" 라고 했다.

    아이들과 내가 '같이 찍힌' 사진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왔다.

    사진 속의 나는 결혼을 상상도 하지 않고 여행을 다니던 27 세의 활기찬 젊은이였다. 

    동료 여행객에게 '여기 사진 찍어~~! 난 희생 제물이다!' 라고 장난삼아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던 나는 내가 결혼을 할 것이고, 내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사진을 찍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바로 그 공간에 아이들이 가서 찍은 사진은 30 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나와 아이들을 한 마음의 공간에 묶어놓았다. 27 세의 나와 17 세, 19 세의 아이들은 사진 속에서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여행다닐 때 호스텔에서 만나 사귀던 여행객들과 같은 그런 친구들이었다.

    사진 한 장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까지 해본 적이 없는 가족 여행을 하는 듯했다. 

    집에서 아버지 수발을 들고 있는 나와 에릭은 델피 신전에 있는 아이들과는 다른 공간에 존재하지만 나, 에밀, 꼴렛이 나란히 있는 사진 한 장은 우리를 육체적인 한계, 공간의 분리를 뛰어넘어, 그리고 30 년이이라는 시간의 차이, 10 시간이라는 시차의 한계도 뛰어 옆에 같이 존재하는 듯한 아름다운 착각을 가능하게 해줬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했더라면 우리에게 평생 주어진 엄마/아들/딸의 자연스러운 역학관계때문에 오히려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같은 여행객으로서의 동료의식, 공동체 의식과 같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그런 귀한 가족 여행이었다. 그 여행의 미묘하게 행복한 감정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