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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치매에 걸려도 돼!
    부모님 이야기 2018. 11. 21. 11:38

    어르신들이 다 그러하듯이 아버지는 치매를 두려워하셨다. 

    인지능력과 인격을 상실하는 것도 두렵고, 자식들을 힘들게 하게될까봐 두려워하셨다.

     

    아버지는 18 세기 영국의 문필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

    스위프트는 유명한 고전 '걸리버의 여행기'의 작가로서 사회 비판과 풍자로 명성을 날린

    당대의 최고의 문필가로서 부와 명예를 축적했으나, 말년에 뇌졸증 후 우울증과 언어장애를 앓았고 

    3 년간의 투병 후에 사망하였다. 아버지는 그의 시종들이 치매로 인지능력을 상실하고 침을 질질 흘리는

    스위프트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을 받고 그 추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치매라는

    무서운 질환이 가져온 한 뛰어난 작가의 드라마틱한 몰락을 한탄하셨다.


    아버지는 사고로 침대 신세를 지게 된 이후에 자주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떠올리셨다. 당신이 

    갑자기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니 지적 능력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치매라는 상태가 

    언제고 닥칠지 모르는 가능성으로 느껴지신 것같았다. 


    아버지의 염려를 더 심화한 것은 옆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였다. 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3 년 전에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신 무렵, 우리 옆집에는 치매의 할머니와 뇌졸증 후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두 분 다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으나 두분이 늦은 나이에 재혼을 한 사이로 

    (내 또래의) 서로의 자녀들은 간병인을 두는 것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할아버지와 불편한 관계인 

    그의 자녀들은 할아버지를 위해 재정적 보조를 하지 않았고, 할머니쪽 자녀들은 할머니를 위해 

    간병인을 두지만 간병인이 할아버지에게 힘을 쏟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안스러운 상황이었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몸으로 하루하루를 살면서 몸이 더 쇠약해졌고

    할머니는 상주하는 간병인들이 목욕, 산책, 식사를 돌보아 건강했다.


    어느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자녀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고, 당연히 유품 정리도 

    애초에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자녀들이 담당하니 아주 잔인하리만치 간단했다. 

    이삿짐 센터 트럭이 와서 할아버지 모든 물건을 거칠게 옮겨 실어 가져갔다. 


    나는 그때 놀랍고 슬픈 장면을 목격했다. 짐꾼들이 트럭에 짐들을 던져싣고 있는 와중, 자기 남편이 

    사망한 것을 알지 못하는 치매의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밝은 미소를 띠고 "Good morning everyone!" 

    하고 외치며 산책을 나가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나도 잠시 후 아버지를 모시고 산책을 나갔는데 

    돌아와보니 트럭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사진들이 몇 장 흩어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품 정리 중에 

    떨어진 사진들임이 분명했다. 한 장 집어들어 보았더니 젖살이 통통한 볼, 큰 눈망울의 귀여운 

    아가의 흑백 사진 뒷면에 할아버지의 이름과 사진이 찍혀진 날짜가 적혀 있었다. 사진을 줒어 쓰레기통에 

    버리며 내 마음이 착잡했다. 길에 버려진 사진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졌던 할아버지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같았다. 또한 그의 자녀들은 얼마나 깊은 상처가 있기에 끝까지 할아버지를 

    거부했을까 싶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의 상태가 서서히 악회되었다. 그녀의 자녀들은 각기 다른 날짜에 

    일주일에 두어 번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그중 가장 자주 할머니를 찾아온 것은 막내딸 카렌이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임무가 엄마를 24 시간 돌볼 수 있는 요양 보호사들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것은 가격이 좀 싸지만 간병인의 자격과 신뢰성에 의심이 있기에 자기는 요양 보호사 에이전시를

    사용하는데 요양 보호사가 하루에 8 시간 이상 근무를 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 되어 있어서

    할머니는 하루 세 명의 다른 간병인이 돌봐주고 있다고 했다. 시간 당 22 불이라 한달 지출이

    어마어마하지만 다행히 할머니가 재산이 있어서 그 돈으로 지불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훈련과 실습을 통해 자격증을 소유한 간병인들이니 할머니를 돌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리라 

    추측하지만 나는 그들이 할머니의 쓰레기를 처분하는 모습이 무척 안타깝다못해 유감스러웠다.

     

    미국은 개인 주택의 경우, 시에서 쓰레기통을 두 개 (재활용, 일반쓰레기) 지급해주고 일주일에 한번씩 

    트럭이 와서 쓰레기를 수거해간다. 차고에 보관하는 쓰레기통은 뚜껑을 잘 안 닫으면 주위에 냄새가 

    진동하고 파리도 끓으므로 신경을 써야한다. 그런데 할머니의 간병인들은 기저귀 쓰레기를 꼭꼭 묶지도 

    않은채 버리고 쓰레기 통을 잘 닫지 않았으며 그 쓰레기 일주일 내내 차고 밖에 방치했다. 어떨 때는 

    기저귀 꾸러미 봉지로 쓰레기통이 넘쳐났는데, 뚜껑을 잘 닫지 않으니 까마귀들이 봉지를 쪼아 뜯고

    일부는 기저귀와 음식 찌꺼기를 입에 물어 길가에 질질 끌고가 버렸다. 특히 일주일의 마지막 무렵 

    쓰레기 통이 꽉 차 넘쳐자는 때에는 온 종일 할머니의 쓰레기 조각들이 동네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나야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할머니를 잘 몰랐지만 할머니를 오래 알아온, 그래서 할머니가 얼마나 

    유쾌하고 활발하고 유머센스가 있는 멋진 여성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이웃들은 '레슬리가 자기 

    기저귀 쓰레기가 온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놀랄까' 라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자신의 쓰레기가 이웃의 동정을 사는 것을 모르고 있는 치매 할머니에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치매가 얼마나 끔찍한 병인가를 다시금 절감하였다.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면서 닫지 않은 쓰레기 통에 덕지덕지 싸여있는 기저귀 꾸러미를 볼 때마다

    탄식했다.

     

    "아...아...치매는 정말 무서워...할머니가 깨끗하고 예쁘게 화장하고 산책을 가면서 버려진 자기 

    기저귀 쓰레기 옆을 지나가는 것을 모르다니...너무 가엾는 노인이다."


    그런데 할머니를 자주 맞닥드리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할머니와의 대화를 즐긴다는 것!


    할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는 말을 거는데,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므로 우리의 대화는

    일방적이었으나 나는 대화 중 드러나는 할머니는 다정하고 유쾌한 성격이 맘에 들었다.

    인지 능력이 망가진 그가 하는 엉뚱한 말도 재밌었고 그녀의 단호함과 자신있는 태도가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치매가 걸린 뒤에 만난 나로서는 치매 전의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으므로 치매 증상을 뛰어넘어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을 하나의 성격으로--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여하간 

    나는 할머니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회의하지 않고, 할머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망설임 

    없이 맘대로 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할머니를 돌보는 도우미들의 얼굴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고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지만 할머니는 내내 밝고 즐거웠다. 누가 해주는 건지 자신이 하는 건지 모르지만 빨간 

    립스틱을 바르기도 했고, 파란 자켓을 입고 파란 모자를 맞춰 쓴 날은 10 년도 넘게 젊어보였다.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보였고 할머니의 밝은 표정에 나는 점점 익숙해졌다.

    또한 치매 환자를 걱정하는 것은 치매가 안 걸린 사람들의 몫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치매 당사자는 내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그런 편안함을 느끼고 산다는 사실에 이상한 안심이 느껴졌다.


    나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도 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더우기 할머니 치매 증상은 아주 밝고 긍정적이므로 일반적인 치매 증상이 아닌데?

    주위에서 치매 노인들/부모들를 둔 사람들로부터 우울증을 동반한 치매환자도 있고,

    아주 독선적으로 되고 성격이 거칠어져 주위 사람들을 고생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다정한 나의 아버지가 갑자기 성격이 변해서 나에게 화를 내고 거친 말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몹시 힘들것이다. 

    그러나 (장담을 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만약에 내가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만 보지 않고 '환자' 또는 '남' 또는---이게 가장 중요한데--

    하나의 인간으로서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아버지의 수발을 들면서 나는 아버지를 '내 아버지'만이 아닌 '강대건이라는 한 인간'으로 보았었다.

    그러니 강대건 씨가 치매에 걸렸을 때 어쩌면 '내 아버지를 잃었다'고 좌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에 치매였던 아버지를 잃은 한 지인이 한 말이 있다.


    "아버지가 치매일 때 나는 너무 슬펐어. 나를 못 알아보고,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이전까지 우리가 같이 했던 삶이 다 송두리채 사라져버린 것같았어.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더 슬퍼지더라.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오래 알아온 사람이 돌아간' 거니까.

    나를 55 년간 알아온 아버지가 없어졌다니 정말 허무했어."


    아버지의 치매와 죽음을 맞이한 그녀는 당연히 허무했고, 당연히 슬펐으리라.

    그러나 그녀의 허무함, 슬픔의 근원은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의 죽음'이 되어버려서이다.

    아버지의 치매는 '나를 기억하고, 나와의 일들을 기억하는 아버지'가 사라진 것이며

    아버지의 죽음은 '나를 기억해주고 나를 알아온 아버지가 가셨다' 이니,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일관성있게 '나' 라는 자신에 관련해서만 정의되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치매 아버지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가 기억을 잃는다고 해서 

    모든 '기억' 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억은 존재한다. 

    딸인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러니 내가 기억하면 되는 거다.


    아버지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 알아온 사람이 죽었다' 라는 소리는 결국은 

    '나'에 의해서 '아버지'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것이다.

    즉, 아버지란 존재는 '나를 비추기 위한 거울'이 되어버릴 따름.

    부모가 기꺼이 자식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려할 수도 있고 그것은 부모의 선택이겠으나.

    딸의 입장에서 부모를 '나의 거울'로만 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모도 독립적 인간이니까.

    그리고 부모를 한 인간으로서, 나의 연장이 아닌, 나의 거울이 아닌 한 독립적 개체로서 인정한다면 

    치매환자인 부모를 받아들이고 좀 더 침착하게, 그리고 덜 감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아버지가 어느 날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담박 아버지의 생각을 잘라버렸다. 


    "아버지, 치매 걸려도 되!"

    (막내딸 특권-- 애교삼아, 친선만세를 위해 가끔 반말을 쓴다.)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아버지, 저 진짜 아버지한테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버지, 정말 아버지 치매 걸려도 돼요. 안걸리면 더 좋지만 걸리더라도 그게 큰 일 아니에요.

    아버지는 다른 의식의 세계에 있는 거고, 분명 그 상태가 완벽하게 편안치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주 끔찍한 상태도 아닐 수도 있어요. 단지 언니랑 나를 생각해서 치매를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그러지 마시라고요. 옆집 할머니 봤잖아요. 모쪼록 할머니처럼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을 때 아버지가 편한 상태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된거에요."


    아버지가 나의 말을 막았다.


    "아이고, 그러면 어떻게 하니! 내가 편하다고 뭐가 좋은 거야? 늬들한테 미안하지.아!"


    나는 또 내 생각을 피력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편하면 되는 거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게 나한테 좋은 거지 뭐!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서 힘드시다면 

    그건 가슴아프겠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치매 걸려서 나를 잊었네' 하고 슬퍼하고 낙담하지 않을 게요.

    진짜로!! 

    제발 절 믿어주세요. 

    아버지가 치매에 걸릴 경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까 미리 말씀드리는 거에요.

    아버지께 약속할 수 있어요.

    저는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도 쿨~ 하게 받아드릴 거라고요. 

    그럴 수 있을 거같아요.

    그리고, 아버지와의 기억? 그것은 사라지지 않아요.

    왜냐, 제가 간직할 거니까.

    저는 계속 아버지와의 옛일,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리워할 거에요. 그러면 된 거에요.

    아버지가 그걸 알아주세요. 꼭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아유...넌 그렇게 생각하니...?" 하셨다.


    그러나 내 말이 아버지께 설득력이 있는 것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참...내 마음을 모르시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때 아버지께 했던 말이 다시금 내 마음에서 메아리친다.


    아버지가 편하시면 된 거에요....

    난 아버지가 좋은 게 좋다고 믿기때문에 아버지를 위해서 기뻐해줄 수 있어요.

    아버지와의 추억은 내가 기억하면 되는 거에요.


    그러고보니 치매도 '관계의 단절' 이란 면에서는 죽음과 다를 바 없는 것인 것같다.

    그렇다면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면서 사는 사람들은 펄펄 살아있는 죽음과 매일 씨름하며 사는 것이리라.

    그 고통은 엄청나게 크겠구나 싶었다. 나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셔서 오랜 시간을 나와 보냈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쿨~ 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겸허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죽음도, 치매도, 한 인간이 겪어내는 삶의 여정일뿐,

    그 여정의 한 부분을 같이 한 사람들이 나눈 사랑과 사랑의 기억은

    죽음도, 치매도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사실로 사랑하는 이를 치매 앞에서, 죽음 앞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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