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야기
할아버지의 붓, 할머니의 먹
famfem
2009. 2. 5. 01:53
오랫만에 아버지께서 붓글씨를 쓰셨다.
몇 달 전, 내가 이번에 미국 오실 때에는 아버지께서 붓글씨를 좀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엄마 아버지가 좋은 한지, 붓, 먹, 벼루를 구해서 미국에 가지고 오셨다.
엄마가 먹을 갈았다.
순식간에 온 식탁에 향기가 퍼졌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조용히 구경했다.
엄마는 먹 가는 내내 아버지께 정확한 조언을 해주셨다.
'먹이 충분히 안 갈렸어요. 글씨가 흔들리네요. 좀 크게 쓰세요. 간격을 맞춰야겠어요...'
자녀를 먹여 키우느라 평생 수고한 엄마의 손.
아버지가 붓을 들어 힘찬 필치로 글씨를 쓰듯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엄마는 준비해주고, 기다려주고, 밀어주고,묵묵히 묵을 가셨다.
고마운 엄마.
먹을 가는 엄마 손과 붓에 먹을 묻히는 아버지의 손이 만나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두 분이 함께 엮어온 삶을 생각했다.
동반자, 동역자.
엄마와 아버지, 여전히 묵묵하게 같이 가고 있다.
내가 너에 속하고, 네가 나에게 속한 그런 어우러진 존재로서,
그들은 굳게 잡은 손으로
서로의 지친 몸을 부축해가며
글씨를 쓴 것은 아버지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글씨에서 엄마의 혼을 읽는다.
작년 (2008), 부모님이 오셨을 때 서예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시는 싯귀와 말씀을 써주시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영어로 주석을 달아주셨습니다.
그 때 사진들 슬라이드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