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르를~~~ (우리 전화소리)

겨울방학이 끝나고 수업 시작하는 첫 날, 아이들이 아침에 한 소동 벌이고 학교에 가고 난 뒤 숨을 돌리려는 순간에 온 전화, 이상한 일이로다. 누가 이 아침부터 전화를 거나? 국제건화?

“안녕하세요. 나는 룰루랑 같은 반인 다니엘라의 엄마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르나타라고 소개하는 그 여성과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르나타는 나에게 필립의 소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필립? 누구지?  
룰루의 반 친구인가?

“무슨 뉴스라도 있나요?”

“필립이 죽었습니다. 방학 중에..”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이지? 죽다? 아이가? 방학동안 ? 근데 필립이 누군데?

너무도 쉽고 단순한  단어들이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졌다.  단어와 단어가 이어지는 대신, 마치 성냥개비가 똑똑 부러지듯이, 하나 씩 하나 씩 따로 놀았다.

근 20 분 간의 통화로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필립은 자기 집에서 목욕을 하다가 넘어져서 익사했단다. 1 월 2 일에 생긴 일인데 장례식을 오늘 1 월 8 일에 한다는 것이다.
10 살의 소년이 죽다니…내 옆에 가까이에 있는 한 아이가 죽다니…

나는 검정 셔츠와 바지를 준비해서 학교로 달려갔다.  룰루는 나를 보자마나 흥분한 얼굴로, 약간 신나는 듯한 억양으로 소리쳤다.

“엄마, 우리 반, 필립이란 아이가 있는데 죽었어.“

나는 아이가 충격받아 울고 불고 하지 않을 거라고는 추측했지만 그래도 저렇게 즐거워 보일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기에 약간 당황했다. 무덤 앞에서 뛰어노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열 살의 내 아들이 친구의 죽음이 마치 학교 소풍이라도 되는 거 처럼 신나하는 것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둘러 아이의 옷을 갈아 입혔다.  검은 드레스에 검은 색안경을 쓴 르나타가 딸 다니엘라를 데리고 나타났다. 필립의 장례식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이 별로 없단다. 우리와 또 다른 학생 두 명, 담임선생, 그리고 필립과 가장 친한 친구들 몇 명 만이 가는 듯 했다.

필립의 장례식장은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C 도시에 있는 묘지 공원에서 열렸다. 나는 창문 밖으로 작열하는 태양빛을 넘실넘실 받아먹고 있는 거대한 고래 등짝같은 태평양을 보면서 고약한 심정이 되었다. 이놈의 날씨…정말 무심하고나.  아이가 죽었는데…아이의 장례식인데, 너는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할 수 있단 말이냐?

르나타와 나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맺어진 우정에 채 익숙지 않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두런두런 나누면서 차를 몰았다. 에밀과 다니엘라는 둘 다 조용히 앉아 있었다. 다니엘라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침에 뉴스가 발표되자 마자 충격을 받은 여자 아이들이 울었단다. 남자 애들은 안 울었단다.

식장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맨 앞에 관이 있나 봤더니 관 대신에 커다란 화환과 필립의 초상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룰루는 마치 수퍼마켓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처럼  흥분해서 필립의 사진을 가리켰다.  

“엄마, 쟤야! 쟤가 필립이야!”

이 녀석은 친구 얼굴이 반가운 거였다. 필립이 죽었는데. 사진 보고 반가워하면 뭐 하니..

룰루는 장례식이 처음이었다. 영화 말고는 장례식을 본 적이 없으니 신기할 만도 했다. 연신 엉덩이가 들썩거리면서 둘러보고, 돌아보고, 손가락질하고….예의 없이 행동했다.

“룰루, 좀 가만히 있어.“

룰루는 나를 빤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필립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진짜 같지 않아.“

그 때 포기했다. 아이에게 점잖게 행동하라고 잔소리하기에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점잖게 행동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필립이 깨어나서 에밀과 함께 이 장례식을 아수라장 만들고, 부수고, 울고, 때리고, 오줌싸고, 엉망으로 만들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살아서 내 옆에서 말썽 피우고 있는 내 아이가 죽은 아이로 보이는데 어찌 눈물이 안 나겠나. 필립의 엄마는 어떯게 살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 놓을 우유 잔과 접시가 하나 덜 해지고, 크리스마스 선물 리스트에서 아이의 이름을 지워야하고, 아침에 키스로 깨우고, 저녁에 키스로 재워야할 일이 줄어들고, 낮 2 시 반, 서둘러 아이 학교로 데리러 갈 일이 없어지다니.. 여행할 때 예약할 침대 하나가 줄어들고, 자동차 운전하다 가끔 거울로 뒤를 살피면 천사같은 얼굴로 잠에 빠져 있는 아이를 보고 미소를 지을 일이 없어지다니..

아이가 채웠던 시간과 공간의 자리가 너무도 큰데….아이가 없다면 그 공간이 무엇으로 매꿔지는 건가?  아이가 죽으면 엄마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마치 눈사태에 던져저 끝이 없이 막막한 얼음 구덩이로 떨어지는 듯한 아찔함과 공포를 느꼈다.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신의 사랑도, 위로도, 죽음에 관한 멋진 명상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 같았다.

나는 룰루가 부러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추상적이기만 한 그의 천진난만함  나는 부러웠다. 무지와 순수가 부러웠다. 삶의 고통을 상상하기에는 그 상상을 받쳐줄 수 있는 실제의 경험이 고통과 거리가 멀었기에 그런 것인가…내 아이가 너무 어려서인가.  


필립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컴퓨터를 열었다. 나는 아이들 학교의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는 직장 여성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관찰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워 사진을 찍어서 나눠주기 시작했다가, 언젠가부터는 그냥 막 찍어대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 연극이나 발표회, 현장학습 등등, 나는 아이들 사진을 찍는다. 그 때 사진기를 두고 온 엄마라던가, 사진기 바테리를 챙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엄마들을 위해...그 외에 그냥 재밌고 신나는 장면이라던가, 나를 의식하지 않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표정이 아름다우면 그냥 사진찍는다.

나는  내가 학교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 속에 혹시라도 필립의 사진이 있나 궁금했다. 나는 오늘 장례식 사진을 보기 까지 필립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내 사진기는 나름대로 예술적인 순간이라 싶으면 필립의 영상을 잡아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작년에 찍은 사진을 보았다. 학교 행사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아아~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났다.
사진이 있었다.
작년 3 학년 아이들의 연극이었다. 3 학년 전체가 다 참여한 연극이었다. 나는 그 때 룰루의 친구의 엄마가 몹시 아파서 그녀 대신 사진을 찍었다. 내 아이와 그리고 몇몇 아이들을 눈여겨 보며 찍었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잡아낸 필립의 사진이 적지 않않다. 그 중 하나는 필립이 무대의 중간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장례식에서 묘사되었던 필립의 성격--반짝거리게 똑똑함, 착함, 다정함, 장난스러움---들이 다 한꺼번에 표현된 듯한 표정의 필립을 잡아 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사진 찾기를 시작했다. 학교 버스를 타고 어딘가에 가던 현장학습 여행…그 버스에 필립이 있었다. 옆의 친구를 보며 웃고 있었다.  뉴포트 비치에 새를 구경하러 갔던 현장학습에 필립이 있었다. 망원경을 들고…웃으면서…아니면 나에게 등을 향한 채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 후 S 도시의 옛 성당을 방문했던 현장학습 때 필립은 까만 티셔츠를 입고 친구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혔다. 필립은 여기 저기 있었다.

그의 사진을 쭉 모아보면서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필립의 엄마가 보지 못한 필립의 이미지들을 보고 있구나.
필립의 엄마는 내가 참여했던 현장학습에 오지 않았었다. (그랬다면 내가 그 엄마도, 필립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분명 그녀는 필립이 이렇게 저렇게 웃고, 떠들고, 관찰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가 죽은 뒤에 엄마는 이런 사진을 보고 싶을까?
이 이미지가 엄마에게는 너무 큰 상처가 아닐까?

마음이 복잡한 상태에서 나는 사진들을 씨디에 복사했다.

엄마가 어딘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필립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구나.
엄마가 없어도, 엄마의 눈에는 안 보였어도, 필립은 잘 살아 있었구나.

그럼…

천국에 가 있어도 마찬가지인 거 아닌가?
엄마가 천국에 있는 필립을 못 보지만…필립은 천국에 살아 있는 것이니.

갑자기 천상병 시인의 싯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세상에서의소풍이 끝나고 나서 돌아가 저 세상에 대한 소망에 대한 그 시가..
그래.
필립은 천국의 자기 집에 돌아간거고..
엄마가 이 땅에서 현장학습 나온 거구나.


가게에 가서 사진을 현상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폴의 사진은 흑백으로도 인화하고, 확대도 했다.
사진꾸러미를 들고 나오며

“엄마가 옆에 없었을 때....." 라고 나름대로 작품명까지 지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냥 그 사진을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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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아침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 놓고, 우연히 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필립의 엄마에 대한 이메일 받았어?”

“무슨 이멜?”

“응. 필립 엄마가 사진을 구한다고 해. 필립이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든, 백그라운드에 조그많게 나온 사진이든, 사진을 구한다고… 특히 3 학년 때 연극 사진이 하나도 없다고 해. 어떤 사진이든 자기 애가 나온 사진이면 좀 달라고 한다네…”

“나 여기 사진 있는데…?”

그 여성은 깜짝 놀랐다. 내가 사진 봉투를 보여줬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뭐라고? 사진이 있다고?”

“응, 여기.. 흑백 사진도,  칼라 사진도, 확대 사진도…다 있어.  사진 현상해서 들고 다니고 있었어. 장례식 이후로…”

"오…마이…고쉬!!!!!!!!!"

그녀는 온 몸에 살이 돋아나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놀랍다고 했다.
 
 
**
 
나는 필립 엄마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자 마자  전화를 걸었다.

뭐랄까… 이 순간을 위해 이제까지 내가 그렇게 미친듯이 사진을 찍어댄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이 순간이 나에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필립의 양부는 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문 앞에다 사진을 두고 가겠다고 하고는 당장 차를 몰아 필립의 집에 갔다.
사진을 문 앞에  두고, 내 차로 돌아와 필립네  전화를 걸었다.
사진을 받으시라고.


필립의 양부가 필립의 엄마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한단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폴의 집으로 걸어갔다.
눈이 부시게 밝았다.
얄미운 캘리포니아의 날씨…여전히 찬란하고 무심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필립의 엄마가 나왔다.

날씨하고 키가 큰 여성이었다.
연한 금발이 마치 백발처럼 보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듯한데
100 년은 나이를 먹어버린 거 같았다.
또 한편으로 그녀는 마치 어린 양처럼 온유하고 순결해 보였다.
사랑과, 욕심, 열정, 희망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뒤
남은 것 하나 없이 가난한 영혼으로 그녀는 나의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보는 순간 갑자기 성모 마리아 생각이 났다.
아들이 임종을 지킨 성모 마리아의 고통이
살을 에는 추위를 몸으로 느끼게 되듯
내 몸에, 마음에 고통을 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포옹했다.
그녀와 사진 봉투를 같이 열었다.

첫 사진이 나온 순간, 그녀는 나지막하게…연약한 소리로

오,...필립.

아이를 불렀다.

필립이 사진 속에서 엄마에게 웃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씩씩한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편안하게,….필립은 다 웃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 없었을 때, 엄마가 엾에 없어도 폴은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 있었었다.

“오오…어떻게 이런 사진이… 오오!! 나의 필립이에요. 이게 나의 필립이에요.”

그녀의 눈에 눈물 방울이 맺혔다.
나에게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레첸, 이제 당신이 없는 천국에 필립이 돌아갔어요. 당신이 그를 껴안지 못하고, 만지지 못해도, 필립은 잘 있을 거에요. 나는 그거 믿어요.”
 
“오…네. ..고마워요. ”

나는 내가 써 두었던 위로의 편지를 주었다.
우리는다시 껴안았다.
그녀와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나는 내 마음에 있떤 아픔이 서서히 가시는 것을 느꼈다.

며칠 동안 나의 마음을 짓누르던 상실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집착이 주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운전을 하면서 노래가 절로 났다.
내 컴퓨터에  사장되어 있었던 사진 몇 장이 살아나 나와 필립의 엄마에게 준 기쁨이 부메랑이 되어 내 마음에 기쁨이 용솟음치게 해줬다.

천국의 필립이 장난치며, 마치, 친구의 집에 처음 놀러가서 이 방 저방을 구경다니듯이 천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구름에서 스키를 타고, 천사의 나팔 대신 록 스타처럼 기타를 치는, 빛나는 금발의 미소년, 필립을 상상하며 어느덧 내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아, 내가 천국에 있는 필립의 사진을 찍어 그의 엄마에게 선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엾에 없어도 필립이 안녕함을,  필립이 우리에게서 떠난 게 아니라, 돌아갈 곳에 돌아간 것임을, 그리고 우리도 여행이 끝난 뒤에 그곳에 돌아갈 거라는 어떤 증거로서…

그것은 불가능 하리라.

그러나 필립을 통해서 이제까지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그녀와 내가 나눈 포옹이 이미 필립의 살아있음의 증명이다. 나의 마음의 기쁨이 필립의 살아있음의 증명이었다.

필립은 보이지 않는 약속의 세계를 믿고 소망하던 나에게 어떤 구체적인 힘을 주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라는 말씀에서처럼, 나는 믿음의 눈으로 폴이 속한 천국의 세계를 그리고 즐거워하고 감사한다.
 


 
 

"어머니, 요즘 제가 아르바이트를 좀 해요."

"아? 좋구나."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지는 않지만 애들 피아노랑 바이올린 레슨비는 제가 내게 되었어요."

"그래? 잘 됐다."

시부모님과의 대화였다. 나의 시어머니는 아주 따뜻하시고, 며느리에게 잔소리하지 않고, 대단히 기대하지 않는 분이시다. (서양 사람이라서그렇기도 하다.)

"좀 더 많은 시간 일을 할까 생각해봤지만, 여러가지 고려할 때 지금 정도만 일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제가 글을 쓰고 싶어서요."

"그래. 그리고 애들 보고 집안 살림 하기 위해서 그렇지."

나는 그 말에 깜짝...했다. 나가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애들과 집을 보는 일을 할 수 있게끔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게 좋다는 말....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더우기 워낙 살림이 '쥑여주는' 죽임의 수준이지만 그래도 나의 일차적인 직업은 '홈메이커'이다. (나는 '홈메이커'라고 명함을 박은 적도 있다.-.-)

그런데 왜 어머니의 말이 내 심장에 면도날을 (아주 살짝, 살살) 긋는 거 같이,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내가 근 2 년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회복되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 주일이 채 안 되어서였다.

어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내가 싸워오고 있던 내 안의 소리----너는 그냥 '살림이나' 해!---를 나에게 상기시켜주는 듯 했다.

오랫만에 내가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어서 어머니의 반응이 상처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험...험...

나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했다.

"네. 그것도 그렇고, 글을 쓸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기 때문에..."


왜 이렇게 우기고 싶었는지 나도 모른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시 나를 정정하셨다.

"살림하고 애를 보아야하니까.."

나는 전화를 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는데 그래도 상처가 되었다.  

살림과 애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게 내 삶의 척추이다. 부끄러움 없이, 망설임 없이 나는 홈메이커의 일을 직업으로 택했다. (그게 내 첫 책의 주제였다.)

그런데 왜 그게 상처가 되나?
내가 어머니한테서 듣고 싶었던 소리가 무엇이었나?

내가 돈이 안 되도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인정해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시부모님과 나의 관계에서 내가 돈 안 되는 글을 쓴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단지...내가 책을 두 권 출판한 적이 있는, 소위 말해 'published writer' 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약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책이 출판되었으나 팔리지 않았으니까. 내 책이 나올 때마다 어머니는 몇 번씩 나에게 '몇 권 팔렸냐'고 물으셨다.  

어머니가 (내가 보기엔) 집요하게 질문하실 때마다, 두 번 유산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넌 왜 애가 잘 안 서니?' '벌써 몇 번 째니?' 하고 채근하는 것 처럼 불편하게 들렸었다.

글을 좋아서 쓸 때는 참 좋은데, 책이 되면 골치다. 출판 부수에서 출판 매수에 이르기까지 평가 제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 글을 쓸 때는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옷을 거의 다 벗고 누워 일광욕을 하는 듯한 자유로움, 행복함이 있다. 일단 출판이 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 벌거벗고 서서 심판의 평가를 기다리는 초라하면서도 절박한 신세가 되는 것이니까.

해변에 혼자 누워 있을 때는 따뜻한 햇살, 다리를 적셔주는 파도에 의해 자기 몸을 느끼지만, 미인 대회에 나가서는 키, 몸무게, 허리 사이즈가 정확히 재어지고,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과 관중의 소유물이 되어진다. 모래사장에다가 쓰는 낙서는 그 목적이 불투명하기에 즐겁고 부담이 없는 일이지만, 미스코리아 대회해서는 '뭔가 장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상을 탄다'는 압박이 있다.

혼자 쓰는 글이 해변의 낙서라면
출판은 미스코리아 대회였다.

나에게는 그래서 출판이 아주 불편한 일이었다. 출판을 준비하는 내내, 그리고 출판이 된 후, 나는 맘 고생을 많이 했다.

나만 그랬나.
출판사에서도 그랬다.

내가 첫 책을 낸 출판사는 90 년대 초반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라는 조앤 리의 책을 시작으로 그녀의 책의 대박 행진을 기록한 출판사였다.  두번 째 책을 내 출판사는 한비야의 '바람의 딸'을 내 대박을 터뜨렸었다. 두 출판사 모두 나의 글에서 어떤 새로움을 보았고, 나에게 책을 내주겠다고 제의해왔었다. 그래서 책을 쉽게 내게 되었는데, 문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에 '홈메이커'일에 뛰어든 페미니스트 기독교인 나에게 사랑과 성공의 정의가 세상의 그것과는 무척 달랐다. 밥 빨래는 기본이요, 떨어진 장난감을 줍고, 애들 재워주고, 먹여주고, 궁댕이를 닦아주고, 매일 밤 기도를 해줘야하는 엄마였다. 나는 '바람의 딸'이 되는 것보다 나는 '바람난 아줌마'가 되는 게 쉬운, 그렇다, 나는 그냥 아줌마였다.

출판사 사장들은 나 때문에 곤란한 일이 많았다. 한국어로 책을 냈지만, 나는 한국에서 살지 않는다. 한국인 남편을 두고 있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멋진 삶, 아니면 기막힌 역경의 삶을 이겨낸 여주인공의 삶도 없다. 페미니스트라지만 기독교 이야기를 하고, 기독교인이라면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고, 그게 예수 이야기든, 페미니즘 이야기든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것에 대한 경계를 하니 어디에도 확실하게 어필하는 게 없다.  거기다가 나는 내가 글로서 사람을 현혹하고, 글에 취해서 거짓말을 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결벽증 환자였다. 첫 출판사 측에서는 "이렇게 하면 잘 안 되는데...그냥 하시자는 데로 하는 거에요" 라고 했고, 또 다른 출판사에서는 내 책이 얼마나 안 팔릴까를 (!) 예상해줬다:  박 사장님의 말씀, "책을 살만한 사람이 없어요. 봅시다. 대한민국의 절반은 남자, 남자는 '팜펨' 책 안사요.  여자들을 보자면  '팜펨' 나이의 여성들은 책을 안 사봐요, 젊은 층의 여성들은 밥하고 빨래하는 내용의 국제결혼기 관심 없어하지요. 그러니 책 살 사람이 없네요~ 였다.) 그럼에도 두 출판사는 내 마음에 맞게 책을 내주었고, 그래서 나는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책은 대단한 실패였고, 나는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 (내 단조로운 삶이 출판으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는다)을 느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판매 붓수를 물어올 때마다 나는 참으로 처참한 마음이 되었다. 나의 입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거기다가 나는 이미 마음이 병이 있었다. 나의 두번 째 책은 한겨레에서 연재된 칼럼의 글들의 모음집이었는데, 내 책이 나오기 전에 한겨레 사이트에서 일어난 페미니즘 논쟁에서 주고 받은 말들, 나에게 왔던 수많은 공격적, 비판적 이메일들이 나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었었다. 나는 그 와중에 내 글에 항상 드러나던 긍정적인 사고관, 유머 센스를 잃어버렸다.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에 글보다 더 중요한 일,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하는 일---한 번에 한 사람씩 껴안는 일---에 집중했다. 갓난 아기, 갓난 아기를 본 어린 아이, 마음이 아픈 사람, 몸이 아픈 여성들과 함께 하면서, 내 손은 남의 손을 잡고, 안고, 쓰다듬는 일에 쓰여졌다. 글쓰기는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글쓰기에 흥미를 잃었다. 글로 담을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고, 글로 담으면 안 될 이야기가 더 많았다.  삶이란 것은 글을 쓰기 위해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져야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얼마간 모 교회 홈페이지에 짧게 쓰거나, 옛날 글들 갖다 퍼 올리는 일을 하다가, 어느 때에서부터인가 글쓰기 작업이 완전히 중지 되었다. 그리고 영어로 끄적이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올해 9 월 초부터  한국어로 글을 다시 써보려고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사이엔가 나는 내게 웃음이 회복되고 자신감이 회복되어 있음을 느꼈다.  애초에 누구에게 '나'를 증명하려, '나'를 인정받으려는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그러면 어떠냐,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하면 되는 거고, 남에게 후하게 글을 퍼주는 사람이 되면 되는 거 아닌가...그래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 마음의 공동체를 만들고, 나와 아주 다른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어떤 선택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의 자료, 생각 거리들을 만들어준다면, 그게 좋은 게 아닌가...싶었다.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 때 어머니와 '살림' '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어떤 못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그냥 하신 소리라는 것 안다. 그런데도 내가 어렵게 글을 쓰기로 결정한 뒤 얼마 안 되어 어머니와의 대화가 있었고, 그래서 내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한 며칠간 괴로웠다.

사람에게 화가 나고 미울 땐 용서하기가 싫어진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묵상 중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
어머니는 나에게 '용서할 일'을 많이 하신 적이 없다는 사실.

그래. 어머니는 나에게 상처를 준 적이 거의 없는 분이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조그만 일에도 크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이다. 내가 어머니께 화가 난 적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일곱 번도 안 된다. 오히려 내가 어머니에게 실망을 주고, 어머니가 나를 참고 용서한 일은  그보다 더 할 것이다. 7 번, 70 번, 700 번....용서. 용서. 용서하셨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를 사랑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나를 도와주신 시어머니의 모습이 플래시백으로 나의 뇌리에 펼쳐졌다. 그리고 내 마음에 울려퍼지는 자아 비판~

'얘, 이 문둥이, 둔텡이, 바부탱이 아줌마야! 어머니가 뭐라 그러시던간에, 막으시는 것도 아닌데, 내가 글을 그냥 쓰면 되는 거지, 왜 누가 어쨌다 저쨌다 자해하고 앉아 있니? 어머니 면도칼을 내가 뺏어와 쓰윽쓰윽 그으며 아파하고 있는 거 아니고 뭐냐?"

갑자기 마음이 쌰아~~시원해졌다.
사랑이 회복되었다.

"그래, 글 쓰면 되는 거지 뭐. 원래 어떤 인정을 바라기보다는 나눔을 바라면서 글 쓴 게 아니었니? 그냥 쓰면 되는 거잖아. 인정을 바라지 않는다면, 홀대에도 초연해야하는 거가 당연한 일 아니겠어?"

"야...너도 너같은 며느리 둬 봐. 좋겠어? 애들은 정성들여 키운다만, 왜 밥실력은 그렇게 안 느는 거야? 애들이나 남편이나 다 날씬한 게 체질만은 아닌기여. 쓰게 먹은 게 없는데 되갔어? 억한 심정 풀고, 네 일이나 잘 알아서 하세.."

(나의 경건의 시간은 이런 식이다.-.-)

가만히 앉아 여러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의 평화를 즐기던 중,
갑자기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나무 님.'

나의 친정과도 같은 교회에 잠깐 방문하셨을 때 잠깐 만나 뵈었던 '나무 님'.
나는 그 분이 나에게 글쓰기를 다시 하고 싶은 열정을 심어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 달 전, 오랫만에 친정 교회를 방문해, 예배 도중 눈물 바다가 터져 헉헉 거리던 중이었다. 광고 중에 목사님이 방문객 소개를 하시는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와 같은 줄에 앉으신 중년의 두 부부가 일어나셨다. 넥타이를 안 맨 흰 셔츠와 짙은 바지를 입으신 남성은 마치 야학을 가르치는 이상주의자 청년처럼 신선한 인상이었고, 화려한 미모를 고상한 스타일의 여성분의 자연스러운 미소가 눈에 확 들었다. 친근감이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예배 후, 아랫층에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다. 나는 그 두 분에 끌려서, 평소에 내가 안 하던 짓---새로 오신 분에게 가서 인사하는 일-을 했다.

"방문 오셨지요? 저도 오랫만에 방문한 거지만, 이렇게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나는 그렇게 서로 잠깐 스치는 인사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분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봄산 씨 아니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글쓰기를 중지하면서 교회에는 '봄산'라는 필명에 숨어서 글을 올렸었다. 누가 나를 '봄산'이라고 불러준 게 처음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

"XXX 씨이죠?"

나는 너무도 놀라 말을 못했다. 어떻게?!!

알고보니 그 분은 나의 인터넷 한겨레 칼럼을 다 읽으신 분이었다. 내 글을 찾다가 그 교회의 홈피까지 오신 것이며, 출석하지 않는 교회인데도 즐겨찾기를 해놓으셨단다.

평소에 친정 교회에서 한 달 치 영양을 섭취해가는 포식가였던 나,
그 날은 밥 맛을 잃고 말았다.

너무 놀랐다.

책을 읽고 좋아해주는 분들, 인터넷 글을 읽고 좋아해준 분들이 있었고, 이멜 팬레터도 받아보고, 약속해서 만난 적도 있고 했지만 내가 나의 글의 '팬'을 이렇게 우연히 만난 적이 처음이었다.

나의 옆에 앉아 밥을 먹는 생면 부지의 타인이 나의 꿈..농담..한숨...생각..고민..사랑...을 같이 해왔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 그렇게 해어졌다.

그런데 30 분 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여파는 컸다.


그 날 그가 남긴 말 한 마디 때문에...

'봄산 님, 글 쓰세요. 그렇게 글 쓰시는 것도 선교에요.'

나는 그 날 교회에서 돌아오는 한 시간 반 내내 그 말 한마디를 되새겼다.

내가 해변에서 혼자 뒹굴다가 모래 사장에 그린 글들, 언제 파도에 의해 먹혀질 지도 모르니 부질없는 짓 이었다. 나는 그런데 그게 좋아서 했었다. 가벼운 게 좋았고, 묶이지 않는 게 좋아서였다. 남이 안 보는 걸 더 좋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무척 private 한 사람이므로..


그런데...
나무님을 만난 뒤
그 해변의 글쓰기에 새로운 의미를 보게 되었다.

글쓰기는 아무 목적이 없는 부질없는 장난만은 아니었다.

손에 든 거 없이, 벌거벗은 발로 해변을 거닐던
모르는 이가 갈 길을 멈추고
모래위의 낙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미소로 가볍게 인사하고
자기가 갈 길을 가는 것...

우리가 주고받은
그...서로를 이해하는 미소,
눈길..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글쓰기, 낙서는 바로 그래서 의미가 있다는 사실..

얼마나 엄청난 사실인가?
얼마나 희망을 주는 사실인가?


발길을 멈춘 나의 이웃이
나의 낙서를 들여다보다가
눈을 들어
바다를, 석양을, 하늘을 바라보며 잠깐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잠시라도 할 수 있다면..

내 글이 멈춤의 시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나는 샌디에고에서 돌아오는 자동차에서 내내 마음이 벅찼다.
오랫만에 글쓰기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어서였다.


내가 시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았을 때 생각이 정리되면서 왜 갑자기 나무 님 생각이 났을까?

내가 나 스스로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 나에게 그것을 일깨워준 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포기한 상태에서 글이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긍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셨기 때문이다.

아마  9월 초,  막연히 내가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든 것은 나무 님이 해준 말의 씨가 되어 자란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나에게 뿌려준 희망의 말의 씨가 방학 동안 살림에, 가르치는 일에, 애들 보는 일에 시달리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이제 싹을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림, 중요하다. 애 보는 거 중요하다.  
그러나 글을 쓰련다.

경계가 없이 허물어뜨리면서 흘러가는 아줌마의 시간과 나는 다투려한다.  가스 레인지에 뭔가 끓고 있고, 세탁기에서 빨래가 돌아고, 애들이, 남편이 자기 일들로 즐겁게 바쁜 시간, 나는 글을 쓰련다.  후하게 퍼서 나누고, 평가의 잣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소통의 깊이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련다.


내가 멈추기 위해서.
내가 하늘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순간을 위해서..
이웃과 같이 석양을 보고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기 위해서..

같이 멈추기 위해서..

오늘 우리차 (변거---> "똥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내 옆에 느긋하게 기대 앉아 있던 룰루.


"우리 차 , 너무 낡았다."


한다.



(뭐...새로운 사실이라고.


그거 어제 오늘 이야기 아니잖냐.)



자기가 지나면서 우리 차보다 낡은 차 있나 쳐다봤는데


30 분 동안 한 대도 못 봤단다.



(우리가 이상한 데서 사는 거야~)




자긴 '램보기니' 좋단다.



(내가 언제 새차, 좋은 차 싫다고 했냐?


나도 죠니 뎁이 좋타~ 그래도 쎄시봉이랑 살지 않냐!라는 말 하려다가 꾹...


미성년자 불가 이야긴가 생각해보고 나중에 해야지.)



그 차는 너무 아름답단다.


아아...


(한숨까지.  내가 죠니 뎁 처음 봤을 때도 그랬는데...-.-)



이담에 크면 램보기니 살 거란다.


(앗쭈? 누구 맘대로~ 하려다가, 그것이 아이 꿈 꺾는 언사가 될까봐 참았다.)



어제 엄마가 자기가 랄라 놀렸다고 꾸중할 때 옆으로 '램보기니'가 지나가서


잠시 속으로 흥분했었다나..



(이 녀석? 하고 야단치고 싶은데....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운전중이었다.


운전 무서워하는 나는 운전대 잡으면 천사 된다.


아무리 화 나도 화 못 낸다. 왜?


아직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아아아~~~ !!)



나는 속으로


"어쩌다가 얜 우리랑 어쩌면 이렇게 다른가..." 생각했다.


우리 식구들 다 소박하니 편한 거 좋아하는데..



그런데 지가 그런 걸 어쩌냐.


내가 막으면 뒤로 돌아가서 할 짓 다 하는 거가 애들 아닌가.


(내가 그랬으니 알지라우.)




너무 막지 말자.


너무 막지 말자.


되뇌이는데, 속은 약간 불편해지더라.


앞에 램보기니 있었으면 박았을 지도 모른다.



녀석은 운전대 잡은 내가 폐인, 벙어리 되는 거 아는 지 계속 폼잡으면서 이야기한다.



이담에...자기는 램보기니 타고 맨션인 자기 집에 들어갈 거란다.


그러면 엄마가 (그 때 엄마랑 같이 살 신세야?!! 쩝!)


"룰루, 어서 와. 램보기니를 페라리 옆에 주차해라."


할 거라나.


자기 방에 들어가는데, 집이 너무 커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어


잘 찾아 들어가야한단다.


그럼, 엄마가


"룰루, 오늘 하루 피곤했을텐데, 어서 50 인치 플래스마 티비를 켜고 티비를 보고 싶은대로 봐라.

그리고 나서 게임큐브랑 엑스박스 게임들로 스트레스 풀고..."


(점입가경이구나. 이녀석, 집에 가서 보자.... 하고 이를 갈았는데, 사실, 내가 집에 가서 고달프게 할 필요도 없이, 자기 눈에 코딱지만한 집에 들어가는 게 고문이겠다 싶었다. 참자...)


자기가 게임하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이야기할 거라나,


"룰루, 그 게임 다 하고 나서 그거 하는 거 잊지마."


(그거?  피아노 연습?)


"오늘, 넌 '위 (wii)' 게임, 꼭 해야해."


(정말 놀긴 잘 노는구나...아들...


공부 닥달하지 않았더니, 천장보고 그런 상상만 하고 있구나.-.-)



나는 약간 패배자같은 기분이 되었다.


"뭐...램보기니든, 똥차든, 우린 다 죽게 되어 있어."


(이런...말이 딸리니, 재수없는 소리나 하고.)



이 녀석, 싱긋 웃으며 하는 소리,


"램보기니 타고 가다 사고나면, 내 개인 전용기로 응급실에 실려가겠지.


내 전용 개인 응급실에..."



(너같은 사람 또 하나 있으면 이 사회가....꺼이꺼이....-.-)



이런 아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복수는 나의 힘~~


밥 잘 안 해주는 거 밖에 없다.


(그럼, 맨날 복수 하고 있었네?)




오늘 평소처럼 요리가 잘 안 나왔다.


접시에 그 국적불명, 신원불명의 음식을 놓았다.


(우리집 음식은 많은 경우에 UFO--미확인비행물체--와 같다.)



룰루가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What IS this?"


"새로 나온 음식이야."


"이름이 뭐야?"




............



"램보기니...."



노란색 램보기니와 색깔은 비슷했다.




룰루, 졌다는 표정으로 묵묵히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