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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름아, 같이 살자!
    모성- doodle 2018. 4. 21. 02:36






    오랫만에 미국 방문 중 우리집에 들린 중학교 동창이 너무 예뻐져서 깜짝 놀랐다.

    얼굴이 탱탱하고 화사하니 건강한 자신감이 흘렀다.


    "보톡스야~. 쫌쫌쫌쫌 찍고, 그걸 정기적으로 해야하니까 돈이 좀 들어.

    그러나 이것도 관리야.

    특히 직장 생활 하기 위해서는 관리가 필요해.

    늙은 얼굴은 힘없어 보이니까."


    친구와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 둘의 얼굴의 노화의 차이가 현저했다.

    친구와 대조되는 나의 얼굴을 보면서 늙은 얼굴은 힘없어 보인다는 말이 맞음을 확인했다.


    미국에서 잘 알고 지내는 친구는 남편이 보톡스 자격증이 있어서 공짜로 얼굴을 다듬어 반들반들하고 윤기있다.

    어느날 찬찬히 내 얼굴을 살피면서


    "팜펨 너도 눈 밑에 좀 해야되겠다.

    우리 나이에는 관리를 해줘야해.

    조금만 하면 얼굴이 확 달라지는데...."


    라고 했다.


    최근에 여권 사진을 찍어보니 친구들의 말이 실감이 갔다.

    (여기선 약국 옆의 조그만 사진 현상하는 곳에서 사진을 찍어주는데 조명 없이 저질 카메라로 찍어줌.)


    나의 얼굴을 보고 좀 놀랐다.


    마약 팔다가 경찰에 잡힐 뻔했는데 인질극을 벌여 가까스로 도망, 좁혀들어오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캐나다 국경까지 도망갔다가 

    모텔에서 새벽에 잡힌 (즉..산전수전 고생하고, 잠까지 못자 피곤한!)  여인의 머그샷에 유사한 나의 늙은 얼굴. 


    '이게 내 얼굴이구나.

    다른 사람들은 내내 보지만 나는 못보고 사는 나의 얼굴이구나.

    아, 이제까지 나는 핸드폰으로 찍힌 사진이 내 얼굴인줄 알았구나...'


    웃음이 났다.

    그런데 뭐...어쩌겠나.

    이런 얼굴 그냥 델꾸 살아야지~


    얼굴이 팽팽해지고 건강해보이면 엄청 신날 것같긴 하다.

    어쩌다 마음에 맞는 옷을 입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판인데

    나의 영혼의 '간판' 인 얼굴이 밝고 건강해보인다면 

    얼마나 기분이 쌈쌈하겠는가.


    흥미롭게도 '얼굴이 팽팽하면'  "엄청 신날 것이다" 라는 말은 

    현재의 나의 시쭈그레, 주름살 투성이의 상태가 "신나지 않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름투성이 상태로서 영위해가고 있는 나의 현재의 삶도 나름대로 아주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24 시간 수발 들면서 내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적어졌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만족도가 아주 높다.

    나는 개인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내 친구들처럼

    줌바 클래스나 요가, 플라잉 요가를 해서 몸매를 다듬고,

    골프를 하여 사회생활도 하고 건강도 지키고

    은퇴한 남편과 세계 구석구석을 돌면서 멋진 사진들을 찍고...하진 못한다.

    (위는 다 나의 친구들이 하는 activity 들임)

    그러나 하루 종일 바쁘다보니

    수퍼마켓 가는 것도 의미있는 외출이 되고

    병원 가는 것도 즐거운 나들이가 되며

    어쩌다 카페에 가서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은 '기다림'과 '만남'의 두 가지 이유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 달기만 하다.

    허무하게 시간이 사용되지 않고

    뭐든 의미를 갖고 하는 단순한 삶이 주는 편안함과 만족도가 높다.

    (현재의 삶에서 나의 꿈?

    그것은 도서실 가서 하염없이 책 읽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다.)


    나의 삶과는 사뭇 다른 친구들의 즐거운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는 먼나라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로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여유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먼나라의 이야기라는 게 맞다.

    예뻐지고,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항상 "I'm happy for you" 라는 마음이 든다.

    친구들이 행복하니 얼마나 좋은가.

    또한 나는 안다. 

    "It's not for me." 라는 것을.


    수발을 들고 사는 나의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먼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이기 때문에 "it's not for me" 이기도 하고

    또한 현재로서의 나의 관심사가 많이 달라져셔 "it's not for me" 이기도 하다.

    수발 들면서 시간이 없으니 관심사가 달라지는 것도 맞고

    주름 및 여러 '신나는 일' 에 관한 사고가 많이 달라져서이기도하다.


    얼굴에 주름 하나 더 있고 없고, 주름의 깊이가 깊고 얇고의 정도가 중요한 시기를 훌쩍 뛰어넘은 

    80대, 90 대의 부모님,

    나에게는 그들의 얼굴이 지금 그대로가 좋다..

    지나간 삶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텍스트같은 얼굴,

    매 주름에 (내가 지금도 수시로 끊임없이 묻고 파내고 듣고 즐기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 늙은 얼굴이 나에게 참 소중하다.

    엄마가 보톡스를 하지 않아 얼굴에 나이테가 그대로 담겨있는 게,

    그리고 자신의 얼굴에 대해 편안하신 모습이

    나는 참 감사하다.


    바로 그래서 나는 내 얼굴 있는 그대로, 

    즉,

    "마약 팔다가 경찰에 잡힐 뻔했는데 인질극을 벌여 가까스로 도망, 좁혀들어오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캐나다 국경까지 도망갔다가 

    모텔에서 새벽에 잡힌 (즉..산전수전 고생하고, 잠까지 못자 피곤한!)  여인의 머그샷에 유사한 나의 늙은 얼굴" 

    을 당분간---아마도 영원히---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이다. 


    친구들이 늙어보인다고 안스러워하는 것도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니...감사하면서

    그러나 내 얼굴의 주름 마디마디 속에 숨어 있는,

    현재의 내가 나로 되기까지 공헌을 한 수많은 웃음, 눈물, 좌절, 희망, 찝찝한, 두려움, 분노, 감사----의 경험을 

    다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주름 많은 내 얼굴,

    주름이 더 많아지는 내 얼굴을 잘 델꾸 살 것같다.


    아, 그래, 맞다.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은 다 변하기 마련이니

    어느날 갑자기 내 관심사가 달라져 

    주름, 도서실 운운은 무슨 개뿔!....하면서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보톡스 좀 싸게 할 수 있는 곳'을 찾을지도 모르고

    플라잉 요가를 하고 골프를 치러 다닐지도 모른다.

    주름이 없어지는 얼굴의 경험도 또 하나의 스토리니까 그것도 뭐 재미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나의 견해를 한번 가져봤기에,

    즉 "주름은 삶의 이야기" 라는 견해를 이미 한번 가졌기때문에,

    만약에라도 내가 주름을 제거한다면

    나의 삶의 의미있는 한 부분을, 그 재밌는 이야기를 

    delete 버튼을 눌러 삭제해버리기라도 하는 양

    나는 남 모르게 엄청난 상실감을 느낄 것같다.


    깅까...

    쪼글쪼글 주름아, 우리 같이 가자~~!

    재밌잖니~!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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