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가장 급선무는 부모님을 오빠와 관련된 고지서 영수증들을 많이 받으시지 않게끔 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오빠 이름이 적혀있는 종이만 봐도 울컥 슬픔이 몰려오는데, 엄마 아버지가 오빠 이름으로 우편물을 받는다면 얼마나 힘드시겠는가. 같이 슬픔을 나누어줄 딸들이 한국에 없는데....


부모님과 오빠가 관련되어 있는 서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오빠가 지불하던 엄마의 핸드폰과 부모님의 건강보험이었다. 

보험은 몇 달 후에 저절로 해결되어 통고가 온다고 하니 그때까지 기다리면 되었다. 

엄마 아버지가 그때쯤 좀 잘 서실 수 있게 도와드리면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으실 것같았다. 


그러나 당장 핸드폰은 어떻게 한다지? 자동이체되지 않으니 전화가 끊길텐데...


극심한 슬픔에 빠져있는 엄마가 혼자 핸드폰 회사에 가서 아들이 사망해서 운운하면서 일을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나도 알아듣기 힘든 여러 계약 조건들--빨리빨리 하는 설명--에 엄마가 주눅이 드실텐데... 


한국을 떠나기 1 주일도 안 남은 상태에서 어서 전화 문제의 해결이 가장 큰 숙제였다.


어느날 아침, 부모님을 모시고 나가는 길에 동네의 핸드폰 회사 대리점에 들렀다. 

부모님이 오빠의 주민등록증을 보면 분명 가슴이 아프실 것같아 잠시 은행에 다녀오시라고 하고 나만 핸드폰 대리점으로 들어갔다.


예쁘장하게 화장을 한 젊은 여성이 컴퓨터 옆에 앉아 있었다. 나를 흘끗 보더니 무심하게 모니터로 다시 눈을 돌린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장정들이 어서오세요 인사를 하곤 자기들 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금새 자기들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손님에게 관심이 없는 젊은 직원들을 방해하는 것같은 상황이 난감했다.

그래서 여성 직원에게 '안녕하세요'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앉았다.


사무적으로 '안녕하세요' 대답하는 그녀.



"어떻게 오셨어요?"


그녀는 눈도 안 마주치면서 물었다.

서비스를 받아볼까 하고 온 건데 취조 분위기이다.


이건 내 문제인가?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서비스 업에 몸담은 이들이 '제 간을 드릴까요?' '오, 쓸개를 원하시는군요' 하는 식으로, 정말 입의 혀처럼 살살 녹아들게 손님을 다룬다. 내가 그 문화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약간 심드렁한 한국 직원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건아닐까? 나는 조심스러웠다.


내가 하기 가장 힘든 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저의 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오빠의 전화의 계약을 해지하려고 하는데..."


그녀는 얼굴 표정 하나도 안 변하고 나를 흘끗 쳐다보더니만 모니터에 다시 눈을 돌렸다.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은 때가 있긴 하다. 

나라고 안 그랬던가?

얼굴에 주름 하나 안 생기고 뱃살에 주름 안 생기고 남만 늙고 나만 늙지 않으리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당연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긴 하더라도 상대방이 아픈 것을 알아주는 척 해주는 문화가 있지 않나.

적어도 소비자 서비스 차원에서라도..."그러시군요" 라고 한마디라도 해주는 게 최소한도의 예의가 아닌가. 

위로는 못해줘도 무시는 하지 말아야지.

(사실 이런 생각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그녀를 보고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제가 오빠의 계약 상태도 모르고...거기에 또 몇 가지 더 알고 싶은 게 있어요."


솔직히 나는 그녀의 무심함에 약간 놀라 당황했다.

그녀에게 '오빠를 잃은 나'라는 손님은 '셀폰을 분실한 고객'보다 더 실질적인 중요성이 없는 존재였다.


그녀가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뭔대요?" 물었다.


그래, 당신의 몰인정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신이 자선삼아 안되하는 척 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어차피 내가 당신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니 내가 잘 설명하겠다...


"사실 이게 저의 어머니가 사용하시는 셀폰인데요. 저의어머니가 이 전화기 대신에 돌아가신 오빠의 전화기를 사용하고 싶어하세요..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이 핸폰으로 옮겨서 쓸 수 있을까요? 인터넷에는 이런 정보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녀는 일초도 생각지 않고 거침없이 말했다.


"신분증 좀 줘보세요."


쉬운 일인가보다, 잠시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누구의 신분증이 필요하지? 

오빠, 엄마, 나?


그녀에게 사소한 것을 더 물어보는 게 불편한 상황, 나는 적극적으로 "네! 신분증 다 필요하시지요? 이게 저의 부모님...사망하신 오빠의 신분증...그리고 제 여권입니다" 하고 내놓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신분증을 받아들었다.

그녀가 오빠의 주민등록증을 받아 흘끗 보고 내려놓고 내 여권을 검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서러웠다. 

오빠가 가신지 열흘이 안된 상황이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주민등록증을 만진다는 게 마치 칼을 들어 손목을 자해하는 것처럼 괴로운 때였다. 그래서 상처가 되었다. 그녀더러 내가 나랑 같이 울어달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조금 예의를 갖춰주는 게 당신은 그리 어렵나.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슬프겠지. 그런데 울타리 넘어 사는 이웃의 슬픔에는 그리도 관심이 없나?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그녀의 퉁명스러운 바디 랭기지에 나는 압도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시선, 손가락 놀림, 표정으로 정확히 나에게 표현하는 그녀가 놀라웠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홀대할 수가 있구나. 동시에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 대신에 내가 온 것이. 아무 것도 모르고 굼뜨는 노인이라면 더 푸대접하면했지 잘해줬을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비비 크림으로 도배를 해 잡티 하나 안 보이는 얼굴, 무표정하게 모니터를 보면서 자판을 두드리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내가 지금 인간이 아니라 로보트와 이야기하는 건가 싶었다. 인간의 감정이 가능하지 않은...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말을 했다.


"그래서 뭘 원하시는 거에요? 계정해지? 명의 이전? 뭘 원하시는 거에요?"


"어..그게 뭐지요? 죄송한데 좀 설명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가 모르겠는 게..."


나는 좀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다. 계정해지를 하면 새 번호를 받는 건지, 아니면 번호는 유지할 수 있는지, 명의이전을 하면 가장 좋을 것같은데 오빠 계정을 해약한 뒤에 오빠의 전화기는 그대로 사용하고 싶고....이걸 어떻게 설명하나?



그러나 문제는 간단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오빠의 주민등록증, 내 여권, 엄마 아버지의 신분증을 내 앞에 타타닥 놓았다.


"여기서는 안되요. 지점에 가세요."


"아, 안되나요?  그럼, 지점에 가서 하더라도 제가 좀 잘 알고 가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의 말을 막았다.


"여기서는 안되요. 지점에 가세요."


그녀의 시선은 이미 모니터로 가 있었다. 설명도 하기 싫다는 거다.


그녀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마치 일회용 종이컵이 꾸겨져 버려진 것처럼,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었다.


"인간 취급을 안한다"라는 말이 이거구나 싶었다.


밖에는 은행 업무를 마치고 나를 찾아와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유리창 밖에서 우산을 쓴 채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이 보였다.


갑자기 화가 났다.

한국 와서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한번에 다 터지는 것같았다.

돈 있으면 살기 좋고, 돈 없으면 살기 힘든 거야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라지만 한국의 빈부차는 너무도 심해졌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참 나쁜 곳이다. 돈에 의해서 위아래를 나누고 끼리끼리 어울리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 따돌리는 게 창피한 일이긴 커녕, 그게 자신감이란다, 그게 교양이란다. 어디도 그런 인간들이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땅덩이가 워낙 크고 인종/문화가 다양하다보니 남과 비교하지 않고들 산다. 한국은 너무도 가까이들 붙어 있기때문에 그게 가능치 않다. 물론 한국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인정에 인심이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따뜻한 감성이긴 하지만 그러면 뭐하는가. 돈없고, 힘없고 교육 못받은 채 고속으로 바뀌는 세상에서 간신히 붙어 가는 약자들을 무시하는, 그들과 같이 갈 생각없이 혼자만  빨리빨리 가는 세상에, 각박한 인심에 나는 방어적이었고, 지쳐있었고, 슬퍼하고 있었다.


엄마 아버지를 1 주일 후면 떠나야한다는 나의 개인적인 상황이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엄마 아버지가 이런 사람들에게 계속 치이면서 사실 거라는 두려움도 들었다.


이제는 의지하던 든든한 아들도 없으니사람들의 무례함이나 홀대가 더 아프게 느껴질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건 나의 자격지심임을 인정함)


서류를 천천히 챙기며서 이가 악물려졌다.

그냥 나가면 내가 평생 후회할 것같은 이 억울함이라니..

근 이십년 간 느껴보지 못했던 이런 화라니...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그녀가 또 뭐냐는 식으로 잠시 눈길을 주었다.


나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금방 떨어질 것같은 눈물을 참으려고 억지로 미소까지 머금고 천/천/히 말했다.


"그쪽에서 저에게 해줄 것이 없다는 것 알겠고요.

제가 다른 곳에 가서 이 일을 해결해야하는 것도 알겠는데요...."


"그런데 그걸 꼭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야하나요?

아무리 귀찮다고 해도, 아무리 도와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사무적으로라도 친절하실 수는 없나요?"


그녀는 지나가는 개가 짖는 듯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미 눈은 모니터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 애초에 무시할만한 사람이 하는 소리니 뭐 개의할 일이 있겠는가.


나는 가방을 챙겨서 일어서서 몸을 굽혔다.

(이거, 공격적 바디 랭기지임)


"저기요, 그쪽, 가끔 살면서 화날 때 있지 않나요?

이놈의 세상 왜 이리 엿같지? 하고 욕나올 때 있지요?"


의외에 고상치 못한 소리에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눈에 힘 꽉 주고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한가지만 아세요.

본인이 그런 엿같은 세상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쳇,...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이나..."


비로소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한번 씩 웃었다.

그리고 마치 빨리 자리를 뜨는 게 그녀와의 전쟁에서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서둘지 않고 의자를 움직여 몸을 빼고 천천히, 천천히 걸어나왔다.


--


근래에 싸워본지가 언젠가 싶게 아주 평온한 삶을 살아온 나에게 아주 드문 사건이었다.

나는 그렇게 공격적으로, 못된 소리를 하고나서 내가 마음이 불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서 후회는 커녕, 그 소리를 해서 다행이다 싶은 건 왠일.


내가 못된 소리 했다고 해서 그녀의 모진 마음이 부드럽게 바뀔 리가 없고,

그녀는 성격 고약한 산발, 촌스런 아줌마때문에 하루 잡친 날로 기억하고  계속 잘 살아가고 있을텐데, 괜히 나만 성질 부리고 만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냐? 

나는 그에게 '당신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말을 했어야했다.

그러면 된거다.

찌질한 쌈패라도 좋다.

그냥 그소리는 해야했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나같은 사람은 돈이 안되는 케이스라서---새로 전화를 계약하는 게 아니고, 전화기를 사는 것도 아니므로---그녀가 나를 홀대한 것일 거란다. 그래서 그런 거구나 확실히 파악은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녀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일은 고객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이든 다른 사람을---못배운 사람, 모르는 사람, 힘없는 사람, 돈없는 사람--무시하는 건 옳지 못하다.  나/쁘/다! 


**모르는 사람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나서 내가 기독교인다운 행동을 한 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peacemaker 가 되어야하지 않는감..?  그리곤 에고 치워뿌라~ 하고 생각 자체를 집어쳤다.  peacemaker  가 될 자질도, 이유도, 욕구도 없다.  그리고, 평화를 이룰 때가 따로 있지 못되처먹은 인간들을 받아주는 게 평화는 아니다.  예수님도 기차게 한번 싸우지 않으셨던가~~!


2014.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