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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사랑하는 밴, 안녕~~~
    스치는 생각 2012. 4. 15. 15:31


    나의 미니밴을 떠나보냈다.


    몇 년 전부터 몸이 불편하여 마음 고생을 시키긴 했지만 응급실도 자주 가고, 정기 검진도 해주면서
    정성들여 돌봐주었다.

    우중충한 겉모습만큼 속도 많이 골아 있던 밴, 올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달릴 때마다 천식환자 기침처럼 쿨럭거리는 소음.
    옆으로 틀 때는 뭐가 끊어지기라도 하는 듯이 비명을 지르고
    옆으로 반짝반짝하는 젊은 차들이 씽씽 지나치는데
    묵묵히 털털털털 소리내며 기어가는 밴을 나는 '본처 밴'이라고 불렀다.

    1 년 반 전, 그리 낡지 않은 성능좋은  벤츠를 사고 보니 벤츠는 꼭 젊고 예쁜 애인과도 같아보였고, 상대적으로 미니밴은 뚱뚱한 중년 본부인과 같이 안쓰러워보였고 그래서 '본처 밴' 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되었다.

    갱년기 지난 아줌씨의 뱃짱과 고집의 본처밴.

    한 예로,
    "나, 허리가 빡박해서 유턴 절대 안 할 거다' 라고 부르짖은 뒤 절대로 유턴 안 해줬다.
    한번 하자고 우겼는데 본처 밴이 사거리 한 가운데에서 뒤뚱거리면서 교통체증을 일으킨 뒤 유턴 사인은 내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유턴만 문제인가. 허리가 뻑뻑하니 좌회전, 우회전, 도는 건 다 문제다.
    돌긴 돌지만 절대로 그냥 안 돈다.
    따따...따...따...따...따....따따....
    따발총 소리를 내며 돌아 그렇지 않아도 잦은 총기 사고로 예민해져있는 미국 동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나이 먹으면서 폐쇄적으로 변한 본처밴, 문도 함부로 안 열어준다.
    미식 축구하는 씨름선수 체격의 아이가 문을 못 열고 낑낑거릴 정도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몰고 다녔다. 벤츠 산 뒤 2 년 동안 벤츠 운전석에 한번도 앉지 않고 본처밴만 몰고 다녔다.
    나는 본처를 지켜줄 생각이었다. 그녀의 목숨이 다하는 때까지..

    작년 여름부터 '본처'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응급실 치료도, 정기 검진도 아무 소용 없었다.
    어딜 나가려고 시동 걸었다가 의식 불명의 상태임을 발견하고 당황하기 여러 번.
    아줌마. 이러면 안돼! 일어나, 일어나!
    시동을 걸고, 액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으면서 흔들어봐도 한번 간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냐.
    점프 스타트 연결해서 인공 호흡을 해 간신히 의식을 되돌려 놓고, 안도의 한숨을 돌리곤 했으나
    얼마 후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거다.

    내가 이리저리 뛰면서 본처 밴을 살리려고 하는데
    기뻐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룰루.
    평소에 교회에서는 나무 강대상처럼 서서 딱딱히 굳어서 입도 뻥긋하지 않는 녀석이
    의식 불명의 밴을 보고 '하~~하~~할렐루야'를 외친다.  방긋거리면서 새 차 언제 사냔다.

    랄라.
    영원히 이 차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 밴이 완전히 고장나면 자기 방으로 개조해 쓰고 싶다~면서
    낭만 떨던 게 바로 몇 개월 전이었는데, 어느새 마음이 변해 룰루가 할렐루야 새차사자 부흥회를 하면 은근한 동조의 미소를 띠고 앉아 있다.

    아이들의 기도의 응답인가, 밴이 자주 고장나 겨울 동안 자동차 정비소를 7 번을 갔다. 말이 7 번이지, 차 두 대로 가서 다시 픽업해오고, 그 때마다 돈들고...팔면 500 불도 못받는다는 차에 이렇게 돈을 들이는 게 어리석은 게 아닌가 고민하기 시작. 그러면서도 차 안 사는 게 돈 버는 거다, 버텨보자 하는 욕심으로 며칠 몰다보면 갑자기 또 숨이 끊어져 있는 거다. 비상사태가 너무 잦다보니 우리도 지쳐갔다.


    어느 비오는 날 새벽에 운전하고 가는데 트트득...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잠시 후 또 트트득...트드득...
    아무리 돌아봐도 소리날 곳이 없었다.
    사람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날씨가 어두컴컴해 비가 내리는데 그 트트득 소리가 들릴 때는 전설이 고향이 따로 없더라..
    아무도 없는데 왜?
    나는 마치 호러 영화에서 귀신에게 쫓기는 여주인공처럼 운전하면서 뒤돌아 두리번거렸다.
    트드득 트드득~ 소리의 정체를 발견한 순간 오싹했다.
    차의 문 마다 달린 창문의 lock 이 자기 맘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트드득 소리를 내는 거였다.
    이렇게 말하니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창문마다 lock 꼭지들이 오르락내리락 거리면서 트드득 거리는 실제 상황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정비소 갔더니 아저씨가 부드럽게 "이거 돈 들여서 고칠 필요 있겠어요. 아예 자동 장치를 제거해 버립시다."

    아저씨, 너무 좋다고, 우리 사람 그렇게 하는 거 좋아한다고, 띵호와 띵호와~ 하고 문제 있는 자동장치를 제거했는 그 이후로는 창문을 열고 닫을 수도 없고, 문 하나는 안에서 열 수 없어서 밖에서 누가 열어줘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몰고 다녔다.

    그러나 어느 날, 차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날, 고장나버리는 바람에 룰루가 길에 서서 기약없이 나를 기다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전화를 안 들고가서 연락도 안 되고, 아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화 빌려 연락을 하는 융통성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나는 나대로 발을 동동 구르고, 룰루는 룰루대로 한참 기다리다가 영문도 모르는채 1 시간 걸어 돌아왔다.

    이렇게 믿지 못할 차를 차라고 갖고 있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내렸졌다.밴을 포기하기로 했다.

    클래식 FM 방송에서 자동차 기증을 받는다고 해서 연락했더니당장 그 다음날 아침에 트럭을 보내준단다.

    급히 차를 구했다. 에릭이 본처밴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할 때부터 (지난 해 연말부터) 여러 웹사이트를 서치하면서 차를 골랐으나 나는 본처밴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어 들여다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차를 못 고르면서 에릭은 나에게 왜 이렇게 무관심하냐면서 툴툴거렸다.

    본체밴을 포기하기로 한 뒤에 나도 본격적으로 차를 알아보기 시작, 가격도, 차의 상태도 아주 우수한 차를 3 시간 만에 발견, 영 미더워하지 않는 에릭을 끌고 가 차를 만났고,  상태가 너무도 우수하고 가격도 무난하다 싶어서 그자리에서 계약을 하고 그 다음날 차를 가져왔다.

    (우리집 전통, 뭔가 큰 사고 칠 때는 내가 단칼에 저질러버리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현재 집 살 때, 사막 집 살 때...다 이런 식이었다. 에릭에게 사귀자고 달겨들었을 때도...)

    새 차를 들여온 다음 날 본처 밴은 우리를 떠나갔다. (음..마음이 아프다.)

      

    아침 일찍 토잉트럭이 밴츠를 데리러 왔다.

    정이 많이 들었던 밴이 실려가는 모습 보면서 마음이 어찌나 허전하던지...

     

    (에릭이 '당신이랑 랄라, 훌쩍이고 있는 게 무슨 장례식에 온 여인네들 같아' 라고 한 장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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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처음으로 새 밴 타고 사막 다녀왔습니다.

    제일 좋아한 애는 펠릭스였어요.

    자기가 편히 앉아갈 자리가 있으니까 그리 좋은가봐요.

    (2012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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