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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와 아이패드
    부모님 이야기 2012. 1. 11. 05:39


    그저께 저녁, 식사 준비하는데 아이들 방에서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케레사 세라~~"

    옛날 노래인데?

    이상하다 싶어서 방으로 갔다.

    애들 방은 열려 있고 각기 조용히 숙제하느라 바빴다.

    그럼 이 소리는 어디서?

    옆 방에서였다.

    아.버.지?!!

    문을 여니 아버지가 도리스 데이의 케세라 세라를 듣고 계셨다.

    "엄마, 엄마~~"

    나는 불이라도 난 듯이 부엌의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가 아버지한테 유튜브 동영상 열어 드렸어요?"

    "아니, 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음악을 듣고 계셔요."

    엄마랑 나는 아버지 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아까 문 열었을 때 내 소리는 듣지 못하셨었나,
    엄마와 내가 들어가니 아버지가 깜짝 놀라시더니만
    수줍게 웃으신다. 

    팔순이 훌쩍 넘은 아버지께 아이패드는 역시나 기대했던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터넷을 10 년 전부터 사용해오신 엄마께 더 쉽게 사용하시라고,
    그리고 새벽부터 밤까지 내내 책을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드리고 싶어서 아이패드를 사드렸다.

    엄마는 근 10 년 간 사용해오신 컴퓨터가 더 편하다고 하셨지만 그건 아이패드를 몰라서 하시는 소리,
     사용법이 복잡한 컴퓨터와 달리 손가락 두 개만 잘 사용하면
    전 세계는 물로, 우주까지,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이 기적의 기계에 빠져들으실 것이라 믿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해하시는 아버지께
    아버지가 요새 읽으시는 분야,
    영시와 불경, 그리고 각종 사전 등등을 열어보였다.

    아버지는 귀한 자료, 재밌는 정보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시긴 했지만 자신이 그 정보를 찾아내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 듯했다. 컴퓨터처럼 아이패드도 젊은 사람, 엄마처럼 금방 금방 배우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손가락 하나,  둘로 눈 앞에서 귀한 자료들이 척척 열렸다.

    "아버지, 이렇게 이렇게 하면 페이지가 넘어가고요
    여기다가 검색어 치면 자료가 다 나오고요~~"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가 읽고 계시는 영어로 된 불경 해석집에서 모호한 개념의 단어들을 갖고 고민하시기에
    인터넷으로 불교 사전을 찾아 드리고 영어로 다양한 해석들을 찾아 보여드렸다.

    아버지도 직접 해보시라고 아이패드를 들려 드리고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기시게끔 했다.

    아버지는 몇 번 시도 후 손가락으로 밀어 페이지를 넘기셨다.

    그 순간.

    "야.....아....이거...야....."

    하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날 밤 내내 아이패드로 불교 사전을 읽으셨다.

    며칠 후에는 유튜브 사용법도 가르쳐드렸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혼자 유튜브 들어가서 음악을 찾아 들으시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케세라 세라~~음악이 울리는 방안에서 아버지께 여쭸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

    아침에 LA 타임즈를 읽다가 도리스 데이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고, 그래서 궁금한 김에 유튜브로 노래를 검색해보신 거란다.

    학자의 근성은 뭘 해도 드러나는지 노래 가사도 꼼꼼히 적고, 사진도 스크랩하셨더라.

    그 날 저녁 아버지는 같은 노래를 여러 번 듣고 들으셨다.

    젊었을 때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50 년의 세월을 거슬러가 꿈많고 걱정도 많았던 청년기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는

    아버지, 행복해 보였다.

    85 세의 아버지가 테크놀로지를 통해 미래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나는  마치 아이의 첫 이유식, 아이의 첫 발떼기 를 볼 때의 감동과 비슷한, 어떤 역사적 사건을 볼 때 느끼는 감동을 느꼈다.

    또한 미래의 세계로의 입문이 동시에 수북히 쌓인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과거의 행복한 순간을 참신한 과거로서

    다시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이 약간 아이러니컬했다.

    30 년 후에 나는 어떨까?

    나의 과거를 참신하게 발굴하게 해줄, 내 노년의 새로운 테크널러지는 무엇일까? 

    아이패드를 능가하는 어떤 기계가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인가..

    짐작컨데 30 년이 지나도 나는 김현식 노래를 들으면서 행복해할 것이다.
     
    20 년 전, 이태원의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받았던 충격과 환희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은근히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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