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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손자 손녀의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부모님 이야기 2018. 12. 10. 06:40

     

     

    아버지의 뇌출혈 소식에 아들 샌디에고에서,  딸은 워싱턴 디씨에서 급히 집으로 왔다. 

    아이들이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기운 하나도 없이 말도 못하시던 할아버지는 잠시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하여, 딸에게는 얼굴을 찡그려가며 미소지었고, 아들에게는  “룰루!” 하고 또렷한 소리로 외치셨다.

     

    그게 할아버지가 있는 최대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 이후 할아버지는 천장만 보고 계셨고,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손을 잡아드리는 말고 있는 없었다.  

     

    이틀 후, 아들 샌디에고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이 할아버지 병실에 그냥대기상태로 있는 20 초반의 젊은이에게는 의미가 없었던 게다. 할아버지가 위험한 순간을 넘긴 것같고  자기 말고도 이모, 엄마, 할머니, 버지니아, 아빠가 있으니 자기는 학교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에밀을 그냥 보내는 마음에 걸렸다.  당장 다음날에는 수업도 없으니 굳이 내려가야할 이유도 없는 것같은데....

     

    샌디에고에 가서 해야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니?”

     

    그건 아닌데...내가 있다고 해도 딱히 도울  없어.”

     

    "룰루야,  도울 있어.”

     

    어떻게?”

     

    그냥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으로...”

     

    아들은 잠시 놀란 표정이었다. 뭔가 하는 없이 그냥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니

    그러나 말을 받아들여  샌디에고로 내려가지 않았다.

     

    다음날 (월요일)   점심 때쯤,아이들 할아버지 병실에 왔다. 

     아들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you are coming home today.”

     

    아버지는 말을 알아들으셨지만 금방 말씀을 하지 못하셨다.  마음대로 움직여지는 입을 움직이려 애를 쓰셨다

    그리고 천천히 말씀하셨다.

     

     “I’m so happy” 

     

    아이들도 나도  다 모두 잠시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가 또렷하게 말씀하셔서.

    나는 순간이 중요하다 싶어서 셀폰을 열어 촬영을 했다.

     

    왜요? 아버지, 행복하세요?”

     

    아버지는 “Because… you guys…all…came…” 이라 하셨다.

     

    나는 그순간  마음이 놓였다. 아버지가 이정도로 좋아지셨구나! 시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실 거니까 이제 아들이 자기 학교로 돌아가도 좋을 것같았다. 아들은 그날 오후 샌디에고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새벽에 돌아가셨다. “I’m so happy’ 라고손자들에게 이야기한 13 시간 후였다.

     

    간호사를 만나고 아버지 시신을 화장회사에 보낸 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룰루야, 할아버지가 새벽 3 시에 돌아가셨어. 엄마, 빠빠, 할머니, 이모가 할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에 같이 있었단다. 룰루 너도 어제 할아버지와 함께 해준 고맙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I'm so happy라고 하는 순간 정말 기뻤고 마음이 놓였어. 너와 랄라가 그냥 옆에 있는 자체가 할아버지에게 힘을 주어서 그리도 엄청나게 멋지고 아름다운 --“I'm so happy”-- 하실 있었지. 네가 하루 머물러서 할아버지 옆에 있어준 , 그래서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해준 너무도 고맙다.”

     

    룰루에게서  답장이 왔다.

     

    엄마, 할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걸릴 것같아. 그러나 내가 하루 있으면서 할아버지 옆에 있을 있었던 정말 다행이야....엄마, 엄마는 괜찮아?......엄마는 너무도 열심히 할아버지를 돌봤잖아. 엄마는 amazing mother 일 뿐만이 아니라 amazing daughter 야.”

     

    룰루가 나를 도닥이다니... 이런 모습이 있구나. 무뚝뚝한 아이에게서 받은 다정한 문자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 룰루 나의 말을 들어줘서 하루 묵는 덕에 우리 가족이 할아버지로부터 '행복'이란 말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만약 내가 아버지께아버지, 오늘 퇴원해서 집에 가실 거에요라고 했다면?

     

    아버지는 분명 한국어로는그래, 잘됐구나.”  ...좋다!’ 라고 하셨지 영어로 ‘I'm so happy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 쏘우 해피’ 는  "잘됐다" "좋다" 라는 말보다 훨씬 더 능동적이고 강렬한 행복의 표현이다. 아버지가  힘든 순간에 행복감을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신 것,  그것을 우리가 목격한 것, 다 감사할 일이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영어로 ‘I'm so happy라고 하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면 그냥 거의 반사작용처럼 얼굴이 환해지며 행복해했다.  몸이 아무리 아픈 날도, 마음이 울적한 날도, 아이들이 방에 들어오는 순간  아버지는 마치 한번도 어김없이 몹시 갖고 싶은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활짝 웃으셨다. 나는 아이들이 아무 것도 하는 (doing) 없이 그냥 존재 자체 (being) 로서 아버지께 그렇게 큰 기쁨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왔다. 어쩌면 내가 룰루더러 "그냥 옆에 같이 있는 것"으로써  도와줄 수 있다고 했던 게 아버지께 아이들이 존재 자체로서 기쁨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떤 조건도 없이어떤 행위도 없었는데 그저 사랑을 해주는 것, 그  '무조건적 사랑' 을 부모님은 내내 실천하셨다. 오빠, 언니, 나, 나의 조카들, 룰루, 랄라...우리 모두 부모님의 그 조건없는 사랑의 수혜자들이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운 뒤로 사랑을 받기만 하던 우리 자손들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병상에서 고생하셨지만 그렇게 우리가 사랑을 표현할 시간이 주어진 것은 부모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축복이었다. 

     

    나는 수발의 가장 큰 축복이 받는 사랑에 익숙하던 아이들이 사랑을 주는 주체로 변화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각 22 세, 19세인 룰루와 랄라는 미국 중산층 이민자 가정, 핵가족의 산물로서 부모와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부모한테 대들고 싸운다는 소리 돌려서 예쁘게 해봤음) 평범한 미국 아이들이다. 부모를 사랑한다지만 불손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할버니 할아버지깨는 항상 다정하게 예의바르게 사랑을 표현한다. 특히 할아버지가 병상에 누운 시기는 아이들이 10 대에서 20 대 성인으로의 성장을 하는 어려운 시기였는데, 자기들을 잠깐 보기만해도 행복해하고 모든 것을 다 예쁘게 봐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 덕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할아버지 수발에 참여함으로써 사랑과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사랑과 존중

     

    조부모와 손주들간의 사랑과 존중, 

    그것은 내가 첫아이를 임신하기 전부터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그런 관계이다. 그 꿈의 모델은 시댁 식구들이었다. 벨기에의 에릭의 가족은 한 때 4 대가 같이 살던 그런 대가족이다. 에릭의 부모님이 에릭의 외할머니 ('본마망')가 100 세때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서 모셨고 에릭은 본마망와 각별히 친한 손자였다. 본마망은 부엌과 응접실의 바로 옆 방을 쓰셨는데 그 집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계시는 본마망께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눴다. 손자, 증손자들도 본마망께 스스럼없이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티비를 같이 시청하곤 했다. 미국에서 할머니를 내내 그리워하던 에릭은 우리가 벨기에를 방문한 동안 수시로 본마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모시고 산책을 나가거나 맛있는 식당으로 모시곤 했다. 나는 온 가족이, 특히 본마망의 손자 손녀인 에릭과 그 형제들이 본마망과  살갑게 친하면서도 존중하는 그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관계에 감동했다. 그리고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나의 아이들도 엄마 아버지와 이런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 꿈꿨고 그렇게 노력하리라 마음 먹었다. 

     

    조부모와 친하면서도 존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미국에 사는 핵가족이기때문에 친척들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처럼 가족간의 서열이나 관계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벨기에와 한국의 조부모님들과 아이들이 가까워지려면 일단은 자주 보는 게 중요했다.

    에릭과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한국과 벨기에를 번갈아가면서 방문했다. 부모님들도 자주 미국에 오셨다. 우리 살림이 풍족하지 않을 때여서 잦은 한국 여행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아이들과 부모님이 친해지게 위해서는 가치있는 일이라 거리낌없이 여행에 투자했다. 아이들이 후에는 시부모도, 부모님도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즐기실 있게끔 일년에 한번씩  한달에서 6 가량 우리집에 와서 머무셨다. 화장실이 하나뿐인 좁은 집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는 날은 크리스마스같이 신나는 날이었다. 20 년 전만해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분들은 큰 이민 가방에  별별 짐을 다 싸왔다.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 아버지 키 만큼 커보이는 그런 가방을 풀면 일년 내내 고심하면서 사다 모은 선물이 한가득. (벨기에 시부모님의 선물과 비교되었다.  '선물 잔뜩 사왔다' 하며 가방을 열면 고작 장난감 작은 것 몇 개와 쵸콜렛 박스 두어 통, 옷이나 스카프, 간단했다.)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방은 끝없이 뭔가 계속 꾸역꾸역 나와서 온 마루를 다 어지럽게 채워버렸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오시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럴 밖에. 크리스마스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선물을 받으니! 부모님은 아이들의 산타클로스였다. 

     

    부모님은  기꺼이 아이들의 식사, 목욕, 산책등을 도와주셨고,  아이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면서 

    동시에 나와 에릭도 내내칭찬해주셨다. ‘애들은 이렇게 키워야한다. 그런 방법은 옳지 않다 식으로 훈육에 참견하신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같이 사는 수월하고 유쾌했다.

     

    매사에 칭찬을 하고 격려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손자/손녀가 어디 있으리오.

     

    예로  룰루 선생님이 에밀이 글씨를 너무 흘려써서 알아보기 힘들다고 쪽지를 보내와서 우리는 룰루더러 글씨를 신경써서 쓰라고 잔소리를 했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 이것 . 글씨를 어찌 이렇게 쓰지? 어른 글씨 같다. 나이도 어린데, 획이 아주 자연스럽구나!”

     

    그러네요. 영어인데 붓글씨같아.”

     

    룰루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 글씨 잘쓴다----가 맘에 드는지 내내 보란듯이 자신의 글씨를 의식하면서 쓰기시작했다. 글씨는 자연스럽게 또박또박해졌다. 

     

    늦잠꾸러기 랄라를 깨울 때도 할머니는 그만의 방식이 있었다.  랄라의 이불을 살짝 걷고, 뻗은 다리를 부드럽게 주무르면서,

     

    "이구...예쁜 랄라, 피곤한데 일어나야하는구나...이구.....이구...."

     

    아침에 일어나는 거가 졸지에 영웅적인 행위가 되어버린 랄라는 기분 좋은 감추느라 애쓰면서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랄라는 어느날 나에게엄마도 나의 딸에게 할머니같은 할머니가 되어줄 있어?” 라고 나에겐 감히 꿈꿀 없는 요구를 했다. 바느질, 요리를 놀이처럼 재밌게 배워주는 할머니, 자기가 어떻게 하든 격려해주는 할머니가 좋았던 게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도 내가 할머니같은 할머니가 그건 가능하지 않다 싶던지 혼잣말로 이담에 딸의 딸에게 할머니같은 할머니가 되야지라고 결심하더라..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친한 것은 다행이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도 사랑이 후하시니까 아이들이 버릇이 나빠지는 것이었다.  어느날 랄라는 밥을 먹고 것을 먹으려고 수를 쓰는 자기에게 할머니가 쵸코렛을 주자 삐져서, “할머니, 우리집에 오지마!” 라고 텃세를 하더니만, 느날은 한수 떠서할머니가 들으면 고려장 시켜버릴 거야라고 하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꼬마가고려장이란 말을 아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네 하고  웃기에는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철없는 애가 하는 소리이므로 무작정 못하게 할 수도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모질게 굴거나 무례하게 구는 것은 교포 가정에서 가끔 있는 일이다. 나의 지인들의 이야기도 비슷했다.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득 사온 선물을 풀자마자 아이들은 자기들 장난감만 챙겨서 '고맙습니다’  외치고 자기 방으로 사라져린다,  말이 편하게 통하지 않는 조부모가 귀찮아하고 친구들에게 부끄러워한다, 할머니는 왜 이것도 모르냐고 타박한다...등등

     

    그런데 아이들 입장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자주래야 일년에 한번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르신을 공경하라’  한국식 예의는 미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약자'를 존중하라는 개념은 있지만 나이가 많다고 공경해야한다는 식의 사고는 없다.  그러니 한국식으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하면 못써!” 할머니한테 잘해드려야지!”라는 말, 즉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으니까 공경해야한다라는 소리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안가는 컨셉트인 것이다 (사실 따져보면 그리 합리적인 생각도 아니다.) 그렇다고 윽박질러서 무조건 공손하게 하라고 했다가는  아이들과 부모님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생각할 일이 많았다.  '국제결혼, 미국이민자, 핵가족 아이들이 조부모의 사랑에 버릇이 나빠지지 않고 공경하게 하려면?  오랫만에 손주들에게 사랑을 퍼주고 싶어하시는 부모님의 욕구를 충족시켜드리되 그것때문에 아이들이 버릇이 나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1 년에 한 달이이었다. 그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스레 서로를 알고 사랑하고 존경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고,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그래서 내가 쓴 몇가지 방법이 있다.

     

     

    일단은 사소한 일 무조건 할머니 할아버지를 우선순위로 놓았다.

     

    멜론 맛있는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먼저 맛보게 해드릴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이가 많으셔서 쉬 피곤하시니까 우린 조용히 놀자. 딱 1 시간만.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산책 다녀와라. (실제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 데리고 나가는 산책임)

    할머니 할아버지가 혹시라도 넘어지면 안되니까 너부터 천천히 걸어라.

    할머니 할아버지 내리기 편하시게 앞에 앞에 앉으시게하자.

     

    이런 식으로 한국의 가정에서는 이미 너무도 당연히 하는 일들, 매사에 어르신들을 배려하는 사고방식을 사소한 일에서 실천하려고 했다.

     

    하나, 연극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니까 존중해야한다 하는 대신에  아이들이 쉽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집안에서의 서열을 파악하게끔, 엄마 아빠보다 위의 최고 권력자임을 알게하기 위해서 한 건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콜라는 물론 사탕,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시면 바뀌었다.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뭐든 맛있고 달콤한 것을 사주시게끔 했.  그리고 연극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사주겠다고 나에게 이야기하시면 내가 거부하다가 결국은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에 순종한다는 그런 단순한 시나리오였다. 할머니랑 리허설을 몇번 하고서 실전에 들어갔다.

     

     예를 들자면:

     

    할머니:  “팜펨아, 오늘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가 사탕을 사주겠다.”

    :  “, 엄마. 우린 애들 사탕같은 사줘요..' 

    할머니:  "어쩌다 먹는 괜찮아. 애들이 양치를 해서 충치도 하나 없는데, 

    너무 그렇게 못하게 하면 된다.”

    : “그래도 사탕 사달라는 버릇 생기면 안되는데..”

    할머니:”아니, 할머니가 어쩌다 사주는 거니까 괜찮아. 

    우리가 후에 애들이 사탕 사달라 사달라 조르지 않을 거니까 걱정마.

    애들 웃는 얼굴 보고 싶구나. 이해해라.”

     : ". 엄마. 그렇게 하세요."

     

    사탕 이야기를 하니 주의깊에 경청하던 아이들은 일단은 사탕 먹게되어 좋고,  동시에 자기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엄마와 맞서는 할머니를 더더욱 사랑하게 되면 할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집안의 서열을 확실하게 파악한다.

     

    아이들은 20 분 걸어 사탕가게 가는 내내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길에서 펄쩍거리면서 뛰었다.   ‘할머니 탱큐!’ 하면서 무아지경으로 막대 사탕 을 때,  잊지 않고 꼭 한 말이 있다. 

     

    얘들아, 할아버지한테 감사하다고 말씀 드렸어? 할머니가 내셨지만, 두분이 같이 모은 돈이거든. 할아버지가 사주시는 것이기도 .”

     

    아이들은할아버지 땡큐~!’  외쳤다.

     

    사탕/아이스크림 드라마 뒷전에서 흐믓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힘찬 땡큐에 놀라고 즐거워하시곤 했다. 귀한 아이스크림을 핥아먹으며 아이들은 집안의 우두머리라고 알고 있던 엄마가 순종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권위를 달콤하게 받아들였다.

     

    아이들 버릇이 나빠지게 하지 않기 위해 연극이 하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11 개월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사랑을 표현해주려니 많은 것을 사주려고 하셨다. 부모님이 얼마나 절약하면서 사는지 아는지라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동시에 우리 나름대로의 절약에 익숙해져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선물의 홍수에 버릇이 나빠지는 것도 우려스러웠다.

     

    아이들에게 배풀 행복해하시는 부모님이 계속주는 기쁨 느낄 있게 하면서, 그게 부모님께 부담도 안되고, 동시에 아이들의 버릇도 나빠지지 않으려고 한 방법이 있다. 그것도 간단했다.  아이들에게 사줘야하는 , 필요한 것들 (자전거, 자전거 헬멧, 신발, , 겨울 자켓) 기다렸다가 부모님이 오실 구매했고, 비용은 우리가 부모님께 미리 드려서 부모님이 지불하시는 척하게끔 했다. 부모님은 본인들이 내시겠다고 우기셨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차피 사야할 물건들을 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게 해줄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년을 하다보니 아이들이 아주 어려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한테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좋아했는데초등학교 3, 4 학년이 되면서 달라졌다.

     

    어느날 룰루가 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경제 상태가 어떠냐,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자냐고 물었다. 나는 청빈하게 살아 오셨으며, 현재도  철저히 절약하면서 살고 계신다 말해줬다. 룰루가 깜짝 놀랐다.

     

    "그런데, 우리한테 오실 때는 그렇게 가방에 여러 가지를 담아 오시는 거야?! "

     

    "글쎄 말이다. 누가 아니래니. 평생 그러셨어. 자식 셋에게 줄게 없나...

     본인들은 그렇게 절약하시면서...그래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고 그래.”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선물 사오시지 말라고 ! 

    우리 선물 같은 필요 없어."

     

    랄라도 마찬가지로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보호적으로 되었다. 어느 , 아이들이 사야될 문방용구를 사러 부모님과 나갔다. 아이들이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골라오면 돈을 내가 부모님께 미리 드렸던 돈으로 부모님이 지불하게끔 계획이었다. 아이들더러 각기 필요한 것들을 찾아오라고 뒤에 천천히 구경하면서 돌고 있는데, 랄라가 나를 끌어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엄마, 할머니가 나한테 크레용을 사주시겠다고 하는데 어쩌지? 이거 내가 필요한 거니까 사야하긴 하는데...엄마, 엄마가 할머니 몰래 먼저 나가서 먼저 계산해줘요."

     

    나는  (이미 할머니께 돈을 드린 상태이므로)  여유있게할머니가 너에게 기뻐하면서 주시는 거니까 받아도 된다라고 했더니만, 랄라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

     

    "엄마, 엄마는 할머니 상황 몰라? 연세 많아 일할 수도 없고 들어오는 돈도 없는데,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 돈을 쓰면 되겠어?”

     

    하나도 틀린 없는 말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돈을 함부로 쓰면 안되지!

     

    아이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할머니 할어버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몸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이 들리면 걱정을 했다. 멀리있는 우리들이 있는 것이 없으니용돈을  보내드리자라고 했다. 돈이 없는 자기들이 용돈을 보내드릴 없으니 나를 들들 볶았다. 보내드리자고 며칠 후에는 돈을 보내드렸냐고 확인하는 것으로 봐서 아이들의 머리와 마음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지하는 자리가 확실한 듯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들과 나눈 대화가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 4 학년무렵,  아침에 차를 타고 학교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인들의 노후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늙으면 어디 가서 사는가,  늙은 사람들은 아파서 죽나 늙어서 죽나, 늙는  뭔가--등등 아이들 특유의 흥미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이전의 가족 구조 안에서는 노인들이 보호를 받았고자녀들은 부모를 봉양할 의무가 있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줬다이야기 도중, ‘부모가 자식의 기저귀를 갈아 주고자식이 크면 부모의 기저귀를 갈아주던 옛날이야기를 했는데그게 아이들에게 쇼크였나보다

     

    룰루가 물었다.

     

    "한국의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누가 돌봐주는 거야?"

     

    혼자 사시고 계시지.. 그래서 엄마도 가슴이 아파.

    할머니 할아버지 많이 늙으셨을  돌봐드리고 싶거든.”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에게 ' 오늘도 즐거운 하루!' 하려고 돌아 보았다.

    룰루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랄라는 '엄마  눈에 눈물이 나려고 했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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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는 사랑에서 주는 사랑으로

     

     

    조부모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그리고  어렴풋하게나마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의 기초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미 세워진 사고인 듯하다. 그러나 연세가 많아지시면서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눈에 보이게 돈독해졌다.  선물을 가져오기는 커녕 자식에게 의존하게 된 할아버지를 보며 아이들은 아이들은 미숙하나마 할머니 할아버지께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애초에 자신들을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었듯이...

     

    우리 가족를  흔들어놓은 두 사건--오빠의 사망아버지의 사고--을 겪을  아이들은 둘 다 고등학생이었고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빠가 돌아가시자마자 부모님 건강이 약해지셔서  내가 수시로 한국에 들어가고 몇 차례  이상 머물렀는데, 아이들은 이해해줬다.  이후 우리집에 여행오셨던 아버지가 넘어지셨을 때도 아이들은 우리의 삶의 변화에 금방 적응해서 나를 도와주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신용카드를 주고 원서접수와 기타 모든 일을 ‘네가 알아서 해라했다. 랄라가  3 학년 자기 학년 회장선거, 4 학년 때는 총학생회장 선거, 홈커밍 등등 많은 일들을 했는데, 열정적인 부모들이 많이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꼴렛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고, 나도 에릭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이들도 나와 에릭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에겐 할머니 할아버지가 중요하고, 그들에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가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할아버지 사고로 한국에 영영 못들어가게 되시고 우리집에서 살게 되었을 아이들은 잘되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나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해주었다. 아직도 아주 미성숙하고, 자기 방도 제대로 치우고, 챙겨먹는 것도 못하지만, 적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든든하게 도와드리려고 노력한다는 게 나에겐 너무도 신기했다.  사람이 성장하는데 일관성있게 모든 면에서 성장하지 않고, 어떤 부분으로는 부쩍 크고, 어떤 부분은 더디게 수도 있는 거구나.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몸이 성장할 때 손만 먼저 크고, 갑자기 코가 크고, 나중에 키가 크고 하는 식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사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인 아이들 덕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미국 생활, 그리고 병상에 적응하는 게 수월해졌다.

     

    룰루는 자기가 처한 여러 문제가 산더미같고 마음 고생이 심할 때에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최선을 다해서 듬직한 손자 역할을 하려 했다. 특히 할아버지 수발 중에서힘있는 사람만이 있는 일들을 룰루가 담당했다. 

     

     

     

    할아버지를 휠체어로 옮기기 위해서는 힘있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룰루는 자기가 필요할 때는 기꺼이 할아버지를 휠체어에 옮겨서 산책을 모시고 나갔다.  물리 치료사에게 아버지의 몸의 상태에 대해 자문을 받아 가끔 아버지께 운동을 시켜드렸다.할아버지의 갸냘픈 손에 작은 역기를 들려들이고 ‘할아버지 이렇게 하면 근육이 유지됩니다’ 라고 설명하면서 운동을 가르쳐드리는 룰루를 보면서옛날에 유모차를 타고 할아버지와 공원에 가던 아기가엣날에 할아버지 등에 업혀 약수터에 오르던 아이가옛날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던 아이가...저렇게 할아버지를 돌보게 되었구나... 하고 혼자 추억 여행에 빠져들곤 했다.  할아버지도 분명히 그런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누구에게나 매사에 감사하시는 아버지지만 룰루에게 더더욱 감사해하셨다.

     

     

     

     

     

     

    내가 에릭과 이스라엘로 갸있던 어느 여름, 룰루가 집에 와서 머물렀는데, 정전이 되어 할아버지 수발이 아주 힘든 날이 며칠 있었다. 순간 수발을 드는 것은 할머니와 이모였지만 자기의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서 집에서 대기를 해야하는데 더위에 정전이 되었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자를 주고받는 중에 자기 친구들이 며칠째 같이 해변에 가자고 했는데 못갔다고 하길래 나는 그게 불평인줄 알고 이번 주에는 친구들과 바다에 같이 가라고 해줬다. 에밀은 대문자로

     

    “NO!!!!!!!” 라고외쳤다.’ 그리고는 지금 친구들이랑 필요가 없다면서

     “할아버지는 나에게 우선순위야라고 했다.  

     

    부모에게는 무뚝뚝하고 무례할 때도 많은 에밀, 성숙한 모습보다는아직 크고 있구나...’'언제까지 기다려야하는가' 혼자 생각하게 만드는 룰루인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성숙한 모습으로 절대적 예의와 정성을 다했다.

     

    랄라은 룰루와 다른 방법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즐겁게 한다.  뜬금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웃음 폭탄을 터뜨림으로써. 할머니 옆에 누워 모자라는 한국어로 수다를 떨고, 갑자기 할아버지의 발을 보고 10 동안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기게 생겼다고) 웃고 할머니를 아이패드로 끌어당겨 웃긴 사진 찍어놓고 깔깔거리고 학교 선생님들이 못되게 험담하고, 벌떡 일어나 소녀시대의 춤을 추고...랄라는 우울해질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엉뚱하고, 복잡하고, 웃기고, 황당한 10 대의 세계로 끌어내어 웃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하이 파이브!!" 손녀의 말에 팔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팔을 번쩍 드렸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단조로운 노인의 삶에 연예인만큼 분주한 손녀딸의 생활은 흐릿해지던 시간 관념을 똑바로 세워줬고 (예를 들어 며칠에 무슨 일을 하고, 시에 나갔다, 시에 돌아온다 ), 과거에만 머무르던 삶은 갑자기 미래 지향적이 되었다. (예를 들어 1 후에는 여행을 가고 2 후에 집에 와서, 이것 저것 계획이다 ) .  손자 손녀와 사는 노인들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던데 말이 정말 맞다 싶었다. 한국에서 몸은 건강했지만 두분만 살면서 웃을 일이 없었던 부모님은 미국에서 몸은 불편하지만 손녀딸 덕에 웃을 일이 많아졌다. 

     

    한번은 랄라가 자기 친구들을 초대해 할아버지 생신 축하 음악회를 열겠다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 

     

    엄마, 할아버지랑 돌아가신 삼촌이랑 생일이 가깝잖아. 할아버지가 생신 축하하면서 삼촌 생각하면 얼마나 슬프겠어. 몸도 안좋으신데. 그래서 두분의 생일을 동시에 기리는 음악회를 거야.”

     

    각종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이 음악회를 하고 그것을 감상하는 그런 조촐한 음악회였는데 꼴렛이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고 했다. 모두 정장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랄라 말로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오면 떠들석하고 요란한 틴에이져들의 파티가 되버리므로 원래 음악회의 목적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단아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드레스 코드가 필요하다나.

     

    의도는 가상하지만 누가 오기나할까? 나는 궁금했다. 가족 파티가 아닌데 누가 남의 조부모를 모셔서 같이 하는 정장 입는 파티를 하고 싶어할까?

     

    그러나 랄라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올까봐 엄선해서 초대자 리스트를 짜고 있다고 했다.” 

     

    당일, 랄라가 친구와 쇼핑을 해와서 거실과 군데군데 장식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하나 들어왔다. 너무도 아름다운 아이들이...천사같은 아이들이...

     

     

     

     

    피아노, 첼로, 트럼펫, 그리고 성악, ....이어지는 아이들의 무대. 천재성이 번득이는 에반은 순간의 영감을 담아 즉흥적으로 8 분간 피아노 연주를 했고, 아이잭은 아버지가 오빠가 좋아하시는 찬송을 첼로로 연주했으며, 매리는 아버지가 엄마가 좋아하시는 찬송을 불렀다. 자기들도 처음 해보는 이상한 컨서트, 친한 친구들 사이지만 수줍어하기도 하고, 휠체어에 앉아서 조용히 모든 무대를 감상하신 아버지와 할머니계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매리가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부르는 순간, 구석에 앉아 있는 랄라가 눈물을 흘리는 눈에 들어왔다. 집안의 막내로서 엉뚱한 익살로서 식구들을 웃게 만드는 아이의 마음이 우리가 상상할 없을만치 깊구나, 그리고 안에는 함부로 나타내지 않는 눈물이 흐르고 있구나....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내가 막내로서 하는 거칠고 까불까불한 행동들 속에 내가 감추고 있는 그런 섬약함과 다정함이 거울처럼 딸에게서 보여서였다.

     

     

    아버지께 연설의 기회가 주어졌다. 아버지는병과 노년이란 아주 외로울 있는 시간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나에게 위로를 주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몇몇 아이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랄라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엄마…” 하고 웃으면서 눈물을 감추는데,  동년배 친구를 보는 것같이, 딸이 늙어버린 것을 보면서 대견하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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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나는 아버지가 쓰러지신 후에 우리가 급조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이 바로 응접실과 부엌 옆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꿈이 이뤄진 거구나! 본마망의 방이 바로 그러했듯이. 그리고 집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이 본마망에게 인사를 했듯이 우리집에서도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아버지께 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집에 들어서면 '할아버지한테 인사해' 라고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집에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은 아니므로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색다른 경험에 약간 압도 되었지만 곧 아버지의 밝은 모습에 안도를 하곤했다.

     

    현관 옆의 그 방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바깥 세계를 이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편물이 도착하거나, 친구가 음식을 놓고 가거나, 이웃이 뭔가 물어보러 들리거나, 에릭이 퇴근하거나, 다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 있었다.  집을 지켜주는 문지기 할버니 할아버지는 랄라와 꼴렛이 그 문을 드나들 때를 놓지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룰루는 3 시에 체육관 갔다' ' 랄라는 친구가 데리러 왔더라' 라고 말씀해주셨다.  손자 손녀가 문을 들어설 때마다 수문장님들은 기가 살아났다.  "룰루다!" "랄라인가?" 아이들은 들어오면 손을 씻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러 들어왔다.  

     

    손자 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 방의 문을 여는 순간 어김없이 반가워하는, 사랑이 가득한 시선을 마주했다.  자기들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라는 것은  부모님의 환희에 미소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경쟁 사회에서 자기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삶에 지쳐서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을  맞아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조건적 사랑을 점점  고마워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사랑은 예의바른 태도, 다정한 말로써,  그리고 도와드리는 행위를 통해서 표현되었다.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의 보답이라고나 할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했듯이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병약한 노년의 그 모습 그대로. 

     

    아이들과 같이할 때  방의 기운이 바뀌어졌다아이들의 존재 덕에 웃음을 찾는 부모님은 병마의 노년을 살아내기 위한 평상시의 투쟁은 잠시 잊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온전히 즐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다른 도시에서 살기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며칠은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축제였다. 오기 전에 기다리고, 오면 즐기고, 가면 다음에 언제 오나 기다리게 만드는 아이들, 아이들 어느새인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산타클로스가 되어 있었다. 아무런 선물 꾸러미 없이, 아무런 행위 없이, 그저 자신의 존재 자체로 누구에게 산타 클로스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자신이 죽음을 바로 코앞에 둔 할아버지가 "I'm so happy" 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은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이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이 험한 세상에서 할아버지는  

     

    '너는 너 그대로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떠나셨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  그의 'I'm so happy"를 아이들이 영원히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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