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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신음소리
    부모님 이야기 2018. 11. 17. 11:24

    아버지가 병원에서 집에 돌아온 날 밤, 

    지난 닷새간 매일 밤 아버지 곁을 지킨 뒤에 나는 피로가 축적되어 있었고, 집에 왔으니 잠시라도 자고 싶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아버지가 밤에 자주 깨셨기때문에 집에서도 자주 깨실 가능성이 컸고, 그것은 내가 밤잠을 또 설칠 것임을 의미했다. 그래서 엄마와 언니에게는 어서 빨리 자서 새벽 4 경에 나와 교대 해달라고 하고 아버지 옆을 지킬 준비를 했다.


    11   경에 잠자리에 드시기 전, 병원에서 준 약도 드렸고기저귀도 봐드렸다

    이제 아버지가   시간만이라도  주무시면 나도    있었다


    누적된 피로로 나는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않아 아버지 신음소리에 잠이 깼다. 


    아! 아! 아! 아!


    이상하다.... 


    오늘밤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병원에서 듣던 신음소리와 달랐다.


    병원에서 아버지의 신음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잠깐 큰소리로 부르는 듯한,


    아아아!——“ 식의 단발성 외침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아버지의 신음은 달랐다해변의 바위를 치는 파도처럼 부정기적이면서 정기적인, 

    마치 어떤 리듬을 타는 듯한 그런 잔잔하고 지속적인 신음이었다


    나는 당장 아버지 옆으로 갔다.


    "아버지! 여기 있어요! 괜찮으세요?"


    "응...."


    혹시라도 다시 주무실 있는 아버지를 밝은 불이 깨울까 두려워 불은 켜지 않은채.  어두컴컴한 , 창틈으로 들어오는 불빛으로 시간을 보았다. 자정이었다.


    잠시 안도한 듯 신음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일분도 안되어 아버지가 다시 신음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디가 편찮으세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Neck! Neck!”


    아버지가 영어로 말씀하셨다. 주무시기 전부터 뒷목이 아프다고 하셨었는데...나는 손바닥을 펴서 아버지 밑으로 집어넣어 안마를 하였다. 왼쪽 목의 근육이 딱딱히 잡혔다. 부드럽게 마사지를 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 시원하다. ...어깨가 아파.”


    나는 목에서부터 어깨로 손을 옮겨 어깨 마사지를 했다. 


    이제 괜찮으세요?”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신음하신다.


    “Neck! Neck 아파.”


    나는 다시 목을 마사지했다.


    마치 접시 돌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나는 한군데 마사지 해서 통증을 완화하고 다시금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 마사지를 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이렇게 마사지를 했다. 아버지의 통증이  가신 듯했다.


    아버지, 그럼 잠시 누울께요.”


    .”


    나는 눕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또 아프신가? 하고 잠결에 생각했다. 피곤한 나에게 일정한 박자로 울려퍼지는 아버지의 신음소리는 마치 최면 효과가 있는 단순한 멜로디의 자장가마냥 나를 잠에 취하게 했다. 그러나 나의 깊은 잠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아아! 아아! 아아! 아아!


    왜 이 신음소리가 나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걸까?

    몸살 앓을 때처럼 계속 끙끙거리는 소리가 크레센도로 점점 커지는데 난 이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


    아버지 옆으로 가서 다시 목, 어깨를 주무르면서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더 가까이 들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나도 그렇게 신음소리를 낸 적이 있었지.'


    그렇다. 아버지의 신음소리는 내가 아기를 출산할 때 겪은 진통 때의 나의 신음소리와 같았다. 그 정기적인 박자, 진통제과 아이의 탄생 그 자체 말고는 그 무엇도 완화시켜줄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신음소리...

    그래, 진통은 잠깐 잠깐의 사이를 두고 정기적으로 찾아왔고 점차적으로 그 정도가 강해졌었다. 고통으로 난 계속 신음했고 내가 이상 견딜 없다 싶은 최악의 끔찍한 고통으로 정점을 찍은 뒤 잠시 고통이 사라졌다가 다시 시작되던 산통. 몸에 도돌이표가 부착되기라도 한 듯, 미약한 고통이 시작되어 서서히 커져서 끔찍한 고통으로 이어지며 게속되던 고통.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 그 고통에 나를 맡기는 수밖에....아기가 태어나는 순간까지...


    나의 진통을 생각해보니 정확히 원인을 모르는 아버지의 주기적인 고통이 금방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 많이 아프시지요? 어떻게 하나....제가 계속 주물러 드릴께요.”


    ..”


    아버지의 몸을 주물러드리면 신음소리가 잠시 작아지는 듯했고, 그러면 나는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통증은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아버지 옆에서 서서 내가 같이 나눠드릴 수 없고 도와줄 수 없이 아버지 혼자 겪어내야하는 그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아버지를 안마했다.


    아버지의 신음소리, 그 리듬, 크레센도 소리...나의 진통. 산고..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나 당혹스러웠다. 아버지가 진통제를 드셨기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주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평소에 내가 안마를 해드리면 5 분 내에 깊은 잠에 빠져드시던 아버지, 그러나 이번에는 1 시간 넘어 안마를 해도 아버지는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왜 진통제가 듣지 않는 거지? 얼마나 괴로우실까...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의 양이 너무 적었나? 

    좀 더 드려야하는 건가? 주무셔야 기운을 회복하시는데 어떻게 하지?


    나의 당혹함에 아랑곳없이 아버지의 신음은 지속되었다.

    ............


    12 시부터 2 사이에 나는 여러번 일어났다가 누웠다.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고통이 심화되는 것이 느껴져서 불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어떻게 고통을 덜어드릴 길이 없나?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고통없는 죽음을 주기 위해 진통제를 주기를 원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2 경에 나는 불안함에 그제까지 끄고 있었던 불을 켰다. 아버지의 정기적인 신음소리가 신음 이상의 외침같이 되었기때문이다.  아까부터 유지되어 오는 '박자' 는 여전했지만 신음 소리가 마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기라도 하는 듯하게 처절했다. 불을 켜고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해야했다.



    불을 켜고 내가 예의 하듯이 내 몸을 굽혀 아버지 얼굴 위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버지하고 부르려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이 얼어붙었다.


    아버지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동자가 아주 까맿다. 공주 인형의 눈처럼...

    내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그런 생소한 얼굴이었다. 나의 아버지의 얼굴이...


    마치 대폭 성형수술을 하시기라도 것처럼, 나는 달라진 얼굴에, 내가 아주 잘하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너스레 (“아버지, 걱정마세요. 제가 있어요~~!')   없었다. 아버지가 그리도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에 아버지 얼굴을 뚤어지게 바라보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 나는 몰래 아버지의 얼굴을 훔쳐봤다.  


    '도대체 어떻게 아버지 얼굴이 이렇게 달라졌지?' 하는 생각을 억누르며 적응이 안되는 현실에 적응하려 

    애썼다.


    아버지 얼굴의 변화는 눈에서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주위로 삼각형 모양으로 핏기가 가셔져 있었다.

    또한 나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지금 아버지가 겪고 있는 고통이 그냥 사라질 고통이 아님은 물론, 그보다 고통의 암시하는 위험한 상황이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 침대의 조작기를 눌러 침대의 윗 부분을 위로 올려 앉은 자세로 만들어 드렸다. 황망히 부엌으로 달려가 아까 준비해놓은 흑마늘/ 음료를 가져왔다.


    나는 애써 당황함을 억누르며, 이 상황에 내가 하는 이 행동이 가장 필요하고 바람직하다라고 믿으려고 애쓰면서 꿀물 한 숟가락을 아버지 입술에 갖다 대었다. 아버지가 입을 벌려 받아 드셨다. 나는 용기를 내어 모금 모금 드렸다. 아버지가 아주 천천히지만 한모금씩 잡수셨다. 나는 아버지가 음료수를 드시는 동안 아까처럼 몰래 아버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버지의 눈동자는 아까와 똑같았다. 예전에 읽었던 , 죽음 전의 변화에 눈동자가 커진다는 하나라고 했던 떠올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계신 건가. 


    나는 일단은 떨리는 나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평소에 해왔던 그런 내용의 기도였다. 아버지의 평생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주관해주시고, 이제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켜주심을 감사드리고 찬양하는...그리고 아버지를 모실 있는 이런 영광을 주심을 감사하고,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그런 내용이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하고 기도가 끝났다.

    그런데 아무 소리가 안났다.

    좀 전까지 내가 몸이 어떠시냐고 물어보면 나에게 대답하고 나에게 의사 표현을 했던 아버지가

    내 기도에 '아멘 못하셨다뇌출혈 상태에서도 기도에는 반응하셨던 아버지였는데..


    나는 놀라서 눈을 떴다.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눈을 뜨신 밝고 까만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너무도 신기한 있기라도 듯이, 약간 양미간이 집중된 온전히 앞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 옆에 있었으나 나의 존재는 이미 아버지와 분리 되어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직감했다

    아버지는 죽음과 삶의 정가운데에 놓여 있음이 보였다.

    아버지의 발은 현재의 삶에 있으나 몸통과 머리가 내가 모르는 곳, 내가 갈 수 없는 그곳을 향해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절대로 아버지 앞에서 당황함을 보이지 않았던 나도 상황에서는 몹시 당황했다.


    엄마를 깨워야하는 건가? 이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하지? 아니, 내가 식구들을 부르러 가는 순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어떻게하지? 누군가 옆에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엄마 언니를 불러야하는데 어떻게하지..?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 쳤다.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안타까움에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에서 5 세상을 떠난 오빠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 시간이 없구나!


    나는 미친듯이 이층의 에릭의 방으로 뛰어갔다. 



    에릭, 에릭, 아버지 와서 봐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놀라 일어나는 에릭을 뒤로하고 다시 아래층으로 구르다시피 뛰어 내려왔다.


    문이 열려 있는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기 전, 문턱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심장이 멎는 것같았다.

    아버지는 살아있었으나 이미 죽음 속에 속해 있었다.


    안되겠다. 나는 급히 엄마를 깨우러 갔다.  


    "엄마, 아버지가 이상해. 지금 돌아가시는 중인 것같아" (이게 엄마가 기억하는 나의 말)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 언니를 깨운뒤 뛰어 내려와 아버지 옆으로 갔다.


    엄마와 언니가 왔고


    우리가 도착한 뒤에 아버지는 얼마 안되어 마지막 숨을 내쉬셨다. 


    ——-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마음 속에서는 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신음--소리가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아무리 정지하려고 해도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마치 나의 심장박동인양 끊어지지 않고 들렸다.


    진통시 내는 신음소리와도 같았던 신음소리와 더불어 내가 강박관념처럼 떠올린 것은 아버지의 

    시선이었다불을 켜자마자 보았던, 누운 천장을 향해 있던 커다란 눈망울의 아버지의 시선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던 아버지의 시선

    그는 무엇을 그리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내가 그렇게 아버지의 시선을 떨치지 못하는가를 나는 많은 생각 후에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의학적으로 심장 박동이 멈춘 시간이겠지만, 나에겐 이미 전이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그 짧은 시간, 내가 마지막 기도를 했을 아버지가 반응이 없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세상의 나와 소통할 없었다. 의지가 없는 것인지 힘이 없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과 아무 상관없이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세상, 육체의 세상에 속한 나는 아버지께 있는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죽어야했고, 나는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렇게도 가깝고 다정한 나의 아버지가 나의 존재와 아무 상관없이 자신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그 장엄하고 서러운 서사시를 압도되어 말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진통을 겪는 산모의 신음과도 같다고 느꼈던 아버지의 신음, 그것은 어쩌면 실제로 영혼의‘진통이었을지도 모른다. 열달 동안 자궁안에서 살아온 생명체가 몸을 찢고 나오는 고통이나, 90 동안 강대건의 몸에서 살아온 영혼이 이제까지 그렇게도 편안히 거주하던 몸을 벗어나려니 찢고 찢기고 갈라지는 고통이 필요한 아니겠는가.


    산모의 몸을 뚫고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까지 진통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는 옆에서 남편이 분만 준비 교실에서 배운 라마즈 호흡으로 나를 도와주려고 그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귀찮았었다. 그냥 내가 혼자 아기를 낳게끔, 나의 몸에, 나의 진통에, 홀로 산도를 뚫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기의 리듬에 집중하고 싶었다. 


    나는 그와 비슷한 욕구를 아버지에게서 보았다.

    나는 무어라도 해보려고 했으나 아버지에게는 나의 존재가, 나의 도움이, 이미 필요 없었다

    아버지는 혼자 죽음의 과정, 고통에 올인해 있었다

    아버지는 순간에는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죽음의 과정에 온전히 자기를 내맡긴 한 인간이었다.

    산모와 아기가 생명을 위해 '살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면, 마지막 순간의 아버지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기 위해, 즉 '죽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것 같다는 게 다를 따름. 



    아버지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순간, 평화가 왔다. 

    그의 고통이 끝나고 신음은 멈춰졌다. 

    마치 15 시간 동안의 진통 , 아기가 태어나고, 태반이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오자마자

    이제까지 무슨 고통이 있었냐는듯 내 몸이 순식간에 평안해졌듯이 

    아버지에겐 평화가 왔다.


    평화는 나에게도 주어졌다.

    아기가 산고를 거쳐 엄마의 육체를 벗어나 생명을 시작하듯이

    아버지의 영혼이 낡은 육체를 찢으면서 다시 태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나에게 형언하기 힘든---그리고 방금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딸이 겪으리라 상상하기 힘든--그러한 평화를 가져왔다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은 이들은 아버지가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으셨다는 사실에 의미를 둔다. 이해가 되는 반응이다. 이전에는 나도 그랬었다. 잠자다 눈을 감는 가장 축복,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빠의 임종을 지킨 뒤에, '오빠가 떠나는 순간에 외롭지 않게 같이 있어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떠나시는 순간, '의학적인 죽음' '육체의 죽음' '심장박동이 멈춤' 이전에 이미 죽음이 아버지와 나를 가볍게 분리시키는 것을 경험한 뒤 나는 소위축복받은 죽음 대해 그리 확신을 갖지 못하겠다.


    물론 죽는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고통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보면서 죽는 가장 축복임을 인지하고 죽는 순간을 감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떤 의미로 죽는 사람이 죽음을즐긴다'고 하는 소리같고, 과연 죽는 순간에 인간이 그럴 있을런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어떤 이는 고통 속에 죽고, 어떤 이는 고통 없이 죽고, 어떤 이는 길을 가다가 소위객사 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죽고.....어떤 죽음이 가엾고, 어떤 죽음이 호상이고...그건 살아있는사람들의 견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떠나시는 모습을 본 뒤 나는 죽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 죽음에 집중할 따름이고, 그게 어떤 모습이든 살아있는 자들은 그저 겸허히 존중하면 된다고 믿게 되었기때문이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정확히 5 일에 걸쳐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의 여정에서 (뇌출혈, 병원 입원, 퇴원, 사망) '죽음을 대면한 한 (사회적) 인간 모습과죽음에 집중하고 있는 인간 모습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처음 뇌출혈이 있었을 , 아버지는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고 시간 정도 옆에서 안달하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기도를 순간에 나에게신주야, 고맙다라고 감사를 표현했고, 자신이 마음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줬다. 이후 나흘 동안 아버지는 죽음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의연하고, 가족들의 사랑을 감사하는 그런 '죽음을 대면한 사회적인 인간'이었다. "I'm so happy" 라는 말을 돌아가시기 13 시간 전에 하셨던 아버지는 죽음을 대면한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소위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채비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때 아버지랑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면 아버지는 '나는 너희들이 옆에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기쁘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길게는 2 시간, 짧게는 30 분, 아니 마지막 5 , "죽음에 집중하고 있는 한 인간" 으로서의 아버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의식이 있었지만 의식은 자신의 죽음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내가 곁에서 안달하면서 어떻게든가 해주려고 하는 도움, 죽어가는 아버지를 도우려는 일종의 '라마즈 호흡,'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죽음에 집중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아버지는 그 짧은 순간, 나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진통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내 옆에서 나의 손을 잡는 남편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듯이 나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그 사실이 나에게 상처를 주기 보다는 내가 그의 삶의 엄청난 사건--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는 것에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여러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복잡하게도 했지만 이제 나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  특히 죽는 모습이 어떠하든, 어떤 고통이 수반되든, 어떤 슬픈 사연이 있든 없든, 죽는 사람은 그냥 혼자 열심히 죽는 것이라는 깨달음 나에게 슬픔보다는 위로를 준다. 인간이 유일하게 평등한 순간이다. 거기에 미사여구를 붙이고, 호상이니 뭐니, 상을 크게 치루니, 어떤 묘지에 묻는가....식의 살아있는 사람의 염원이나 고정관념은 덕지덕지 붙이지 않는 게 기본적 예의인 것같다. 


    만약 내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면

    아버지는 그래서 쓸쓸하지 않으셨을 거고, 아버지는 그래서 슬프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버지가 고통 속에서 욕을 하고 고함을 지르다가 사망하셨다면? 돌아가시면서 변을 보셨다?

    뭐래도 상관없다. 애를 낳을 때 변을 보는 산모도 있고, 24 시간 진통을 겪다가 제왕절개를 하는 산모도 

    있다. 그들은 다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두고 두고 이야기하지 않던가. 그거나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욕을 하던, 멱살을 잡던, 변을 보던, 토를 하던, 그건 새 생명을 향한 뜨거운 몸짓의 하나일 따름이다. 죽음에 열중하는 그 용맹스러운 '사투'를 나는 존중했을 것이다.

     



    ---------


    아버지, 아버지의 영혼이 낡은 육체를 찢으면서 새로 태어나시고,

    자유롭게 것을 축하드려요.


    더 이상 죽음이 없는 빛의 세계에서 아버지의 영혼이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면 기뻐요. 

    엄마랑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이미 우리 몰래 옆에서 듣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기 지금 너무 힘든 것은 지금 제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제가 글을 끄적거려서 좀 정리를 해보려고 하는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아버지랑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에요. 

    수발 들때는 매일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던 그 대화가...사라져버렸네요.


    전 아버지한테 막 이야기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실 때 말이에요. 그 때 내가 옆에서 아버지 응원하는 거 안 보였죠?

    아버지는 그냥 죽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셨지요?"


    "아버지, 도대체 나를 무시하고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본 게 뭐였어요? 나 좀 섭섭하던데...?"


    "아버지, 돌아가실 때 눈이 얼마나 예뻤는지! 완전 예쁜 여자 연예인 눈 수준이었다우~"


    이렇게 예전처럼 아버지한테 장난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럴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절절해지고

    아버지가 진짜 돌아가셨거나 절감합니다.


    사별이 아무리 힘들어도 잠시 기다리면 된다는 그런 희망때문에 견딜만한 힘듦이다' 라고 

    번듯한 생각에 나의 마음을 맡기려 하지만,

    모든 게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기분이 꿀꿀하고 힘들 때도 있는 거겠지요.


    지금 당장 저의 친구, 저의 멘토이신 아버지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아버지랑 이야기를 못하니 매일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거라...)


    아버지, 또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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