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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수발과 이혼준비, 그리고 감사.
    부모님 이야기 2018. 11. 12. 16:56


    아버지가 운명하신 날 오후, 에릭과 꼴렛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중, 내가 물었다.


    "커피 마시러 갈까?


    "오, 정말?!

    에릭이 놀란다. 


    '계획 없었는데 갑자기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충동적으로, 마음이 가는대로 커피 마시러 가는 것은 지난 3 년간 우리에게는 상상도 못했던 사치였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은 물론이고 생필품 사러 가는 것조차도 에릭과 엄마와 논의해 시간을 정하고

    나가서도 1 시간-1 시간 20 분 내로는 돌아와야했다. 그래야 아버지의 수발이 순조롭게 되었다.


    에릭이 차를 돌려 평소 나와 같이 가고 싶어했던 Costa Mesa의 커피샵으로 운전해갔다.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가신 거구나...이렇게 갑자기 커피 마시러 가는 상황이 적응이 안되네" 


    조용히 운전하던 에릭이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채, 어깨를 들썩들썩 움직이며 울었다.

    나는 당황했다. 감정 기복이 심한 내가 그러는 거야 당연하지만 왜 에릭이 이러지?

    아무 말없이 그냥 울게 두었다. 

    잠시 후 물었다.


    "Are you OK?"


    에릭이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딱 한번만이라도 더..."


    더 어리둥절한 상황. 나는 조심스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어 토닥였다.

    서서히 에릭의 울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산책을 모시고 나간 지난 토요일이었어.”

    "기억나. 그날 비가 왔잖아. 그래서 안 나가려고 했다가 나갔었지?"


    아버지의 주말 산책은 에릭의 몫이다. 

    엄마와 내가 동행하여 동네의 조그만 공원/놀이터에 가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고 샌드위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주말 산책은 일주일 중에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그런 일정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은 아침부터 종일 보슬비가 내렸다. 오후까지 비가 내려서 산책을 나갈 수 있을까 말까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그리도 좋아하는 산책을 못하시고 집안에 내내 갇혀계시는 게 안스러워서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니 나와 엄마는 나가지 않고 걸음이 씩씩한 에릭만 나가 산책 시간을 

    짧게 줄이기로 했다.


    "그날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어. 비가 내려서 호수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어. 아버지와 나 말고는.

    당신도 알다시피 비가 온 뒤에 공기가 맑아져서 모든 게 다 깨끗하게 보이잖아. 

    먼 산의 봉우리, 바위 위의 거북이, 호수 건너편의 새들을 보여드렸어. 아버지가 참 좋아하셨지."


    상상이 갔다. 아버지가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이.

    맑은 심성의 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것을 신기해하셨지. 


    "아주 이상한 날이었어. 바람 한점도 없이 모든 게 멈춰있는 듯했지.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까 온 세상이 한폭의 그림같았고 우리가 마치 풍경화 속으로 들어가 걷는 것같았어."


    에릭은 떠오르는 기억을 놓지지 않으려는 듯이 빨리 말했다.


    "비는 멈췄지만 공기가 축축했어. 구름에 세상이 좀 어두웠는데, 동시에 그때가 해가 지는 

    시간이어서 밝은 빛이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듯했어. 어둠과 밝음이 혼합된 아름다운 빛.

    그 경치 속을 걸으며 그날따라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


    에릭이 잠시 울컥 솟아나는 울음을 진정하려고 애썼다.


    "아버지랑 내가 이렇게 특별한 경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버지가 이런 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어. 휠체어 밀면서 호수를 도는 내내...."


    에릭의 말에 내 마음은 그 아름다운 경치, 토요일, 아버지가 살아계시던 그 순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에릭이 느끼는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같이 느끼면서.


    에릭이 다시 잠깐 울컥했다.


    "나는...그날...언젠가 아버지를 모시고 이런 경치를 다시 보리라 다짐했어. 

    겨울이 되면 비가 많이 오니까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나흘 후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신 거야.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호수를 걸으면서 했던 생각들이 떠올랐어. 

    이제 아버지를 모시고 산책을 못할까 두려웠던 그 생각과 내가 다시 산책을 꼭 하리라 했던 것이..

    당신 내가 아까 의사한테 Hoyer lift  (몸이 불편한 환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기 위한 큰 기기)

    를 달라고 요구한 거 생각나?  

    난 아버지를 모시고 산책을 다시 나갈 작정이었어. 

    아버지께 다시 그 경치를 보여드리고 싶었어.

    단 한번만이라도 더...."


    흐느끼는 에릭을 보면서 이해가 되었다. 

    왜 그가 그 리프트 기계를 주문했는지...



    에릭과 아버지의 산책에 내가 동행하지 못했으나

    에릭의 호수의 묘사에 가장 부합하는 듯한 사진 두 장.


    --------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지 얼마 안되어 우리 가족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했다.


    아버지가 음식을 삼킬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고, 애초에 연명치료 (삽관이나 심폐소생술) 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서류로서 표명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삽관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영양을 섭취해야하는가?


    입원 후 둘째 날, 의사가 와서 우리에게 호스피스를 권했다.


    "아버님같은 경우 길어야 2 주 정도 사신다" 라면서 의사는 곧 세상을 하직할 아버지를 위해서는 

    호스피스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그는 호스피스를 선택하면 좋은 점을 열거했다.


    "당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제공해드립니다. 침대? 휠체어? 약? 원하시는 거, 말만 하세요.

    다 무상으로 제공됩니다. 호스피스를 하시겠다 지금 결정하시면 바로 내일 침대가 배달되고 모든 것이 

    다 준비될 것입니다. 24 시간 아무 때나 연락하여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호스피스 간호사도 있습니다."


    의사가 손으로 병실을 쭉 스캔하듯이 가르키면서 말했다.

    "지금 여기에 편하게 있으시는대로 집에서 편하게 계시는 것이지요."


    내가 물었다.


    "식사를 못하시면 제일 먼저 탈수현상이 올텐데, 링겔을 맞으실 수 있나요?"


    이제까지 세상 모든 것을 다 줄 것같은 기세였던 의사가 단호히 'NO!' 한다.


    "링겔은 안됩니다. 호스피스는 6 개월 이내에 운명하실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고 링겔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가는 것은 좋지만, 앞으로 의사가 예견한 '2 주' 동안에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모셔야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과연 호스피스가 아버지께 맞는 프로그램인지도 확신이 안갔다.

    2 주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예견이 아니라 2 주 내로 돌아가셔야한다는 것같아서였다. 


    내가 의사와 그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바로 그 '2 주 산다'는 진단을 받은 나의 아버지가 나의 등 뒤에 

    누워 계셨다. 특별한 고통 없이 맑은 정신으로 우리와 대화하시고 어서 혈압이 안정되어 집에 돌아가면 

    좋겠다고 의사 표현을 하시는 아버지가 음식물 못드시고, 수분 섭취 못하시고 2 주 내로 돌아가신다...?

    그 결정은 내가 내리는 거라?


    나는 의사에게 아버지가 시장하다 하시고 목마르다고 하시면 어떻게 해야하는가고 물었다. 


    "식욕을 느끼시지 않을 거에요. 여기, (손으로 자기 입술 밑을 가리키면서) 입술 밑에 아주 소량의 약을

    떨어트리면 됩니다. 아버지는 편안하게 식욕을 안 느끼고 쉬실 거에요. 아주 편안하실 겁니다."


    나는 그 말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진정제, 진통제를 드려서 편안하게 한다는 건가요? 

    그런데 애초에 아버지가 통증이 없는데...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라면 그게 말이 되지만, 통증이 없는데 진통제를 드리는 것이 옳은가요? .

    아버지는 의식이 또렷하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된 만큼 삶의 의지를 갖고 계셔요. 

    식욕이 있으신 분한테 음식을 거부해야하는 건가요?"


    의사는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음식 못 삼키는 분한테 음식 드려서 목에 걸려 돌아가게 하시겠어요?"


    할 말이 없었다. 눈물이 터졌다. 

    울먹이면서 이야기했다.


    "진통제, 진정제를 드려서 '편안'하게 (의사가 '편안'이란 단어를 내내 강조한 것을 되 상기시키기 

    위해  '편안'이란 단어에 따옴표 모양을 붙이면서 이야기함) 돌아가시게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고통없이 아사시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네요. 그 결정을 저더러 하라고 하시는 거고요."


    의사가 약간 당황했다. 

    "아사는 아니지요. 식욕을 느끼지 않으실 거에요."


    의사와 나는 도돌이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입장은 확실했고 나의 입장도 확실했다. 

    서로 다른 입장인 게 문제였다.


    "식욕을 못느끼시는 게 약에 취해서 아닌가요? 약에 취해서 잠을 주무시게 하는 건데...그래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돌아가시는 거고...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잘 알겠지만 저는 당장 제가 

    결정을 해야하는 게 어렵습니다. 


    바로 어제 이 시각에 호스피스 담당자가 와서 아버지를 테스트 한 뒤에 아버지는 호스피스에 갈 상태가 

    아니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지금 2 주를 이야기하며 호스피스를 택하라고 하시고요

    지난 24 시간 동안에 아버지의 몸의 상태 나빴다 좋아졌다 변하는 상황에서 성급히 결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실 수 없을까요?"


    의사가 정색을 하면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병실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병원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고요."


    아, 그렇구나. 

    논리적이었다.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어봤자 치료가 가능하지 않고, 삽관을 거부하셨으로 병원 입장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호스피스 말고는. 의사는 그저 내가 아버지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라 믿을 수있게하려 노력하고 있었고, 나는 결국은 그것을 선택해야했다. 


    내가 상황을 이해한 채 눈물을 펑펑 쏟는 것을 보면서 의사는 짐짓 다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l know, I know...It's so hard...I know..."


    나는 그게 너무 불편했다.

    실망/당혹/절망감에 빠진 환자의 가족을 위로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트레이닝을 받은데로

    그는 아주 프로페셔널한 위로를 나에게 주고 있었다.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지.


    그는 다시 나를 독려했다.


    "호스피스에 모시는 게 당신의 아버지를 위해서는 최상의 선택입니다."


    의사도 내가 우는 상태에서는 더 이상 밀어붙이기가 곤란한지 다음날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날 오후 에릭에게 의사와의 대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에릭은 다음날 대화에는 자기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의사를 만났다. 에릭은 꼼꼼하게 이제까지 아버지의 경과에 대해 문의하고

    의사가 제안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가를 물었다. 에릭 특유의 무뚝뚝하고 차가운 표정에 

    내내 여유있는 미소가 특징이던 의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에릭의 질문에 하나하나 또박또박 대답했다. 

    어제 안타깝다는 표정에 다정한 미소를 띈 채 '2 주일'이란 사망진단을 내리던 때보다 절제된 긴장되 그의 

    태도가 훨씬 더 예의있고 적절하게 느껴졌다. 


    에릭과 나는 비슷한 입장을 피력했다. 생명을 억지로 연장할 욕심은 없지만,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서서히/편안히 돌아가시게 하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또한 에릭은 의사에게 아버지가 어제 의사랑 

    만난 뒤에 아버지가 음식을 삼키실 수 있었음을 상기시키며 나와 자기는 호스피스를 하더라도 계속 

    아버지에게 음식을 드리려노력하기 원한다고 했다. 그는 음식을 원하는 분에게 음식을 주지 않고 진통제와 

    진정제를 드리는 것은 비윤리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나와 같은 생각을) 피력했다.  


    의사는 선선히, "아, 다시 음식을 드셨다고요. 그럼 그렇게 해야겠네요. 음식을 원하시면 음식을, 

    음료를 원하시면 음료를...그게 위험부담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해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의사가 병실을 떠난 뒤 궁금했다. 

    에릭의 진정한 의중은 무얼까?

    에릭은 아버지께 음식을 드리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면서 혹시라도 나를 도와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와 내가 의사에게 일관성있게 같은 의견을 내놓았지만 에릭의 (속) 생각은 다를 수도 있었다.

    3 년간 아버지를 정성들여 모셨으니 (의사처럼) 아버지를 이제 편안하게 가시게 하는 게 좋겠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고에 내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만약 에릭이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매사에 나의 입장은 애매했다. 


    우리는 의사와 면담 후 호스피스 절차를 밟았다. 의사가 말한대로 병원 측에서는 여러 기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리스트를 주면서 뭐든지 고르라고 했다.


    에릭이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구가 있는가' 하고 담당자에게 물었다. 

    의사는 Hoyer lift 라는 환자 운반 기기가 있다고 했고 에릭은 당장 그 기구를 요청했다.


    나는 약간 의아했다. 에릭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버지 몸의 왼쪽이 마비 증세가 있으므로 예전처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길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리 기계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그게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가 의심스러웠다. 

    에릭은 정말 아버지를 휠체어로 옮길 작정인 건가? 그는 아버지가 정말 그만큼 나아지실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버지는 집에 오신 뒤 9 시간 정도 후에 돌아가셨다.



    -----


    에릭의 '속생각'이 나와 다른 입장이더라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그는 아들이 아니고 사위니까.

    '사랑하는 배우자'을 위해서 '배우자의 아버지'를 3년 간 돌보아온 착한 사위가

    장인이 결국 뇌출혈로 음식물을 삼키지 못하게되니

    '이제는 편안히 가시게 해드려야...' 라고 생각한다고 내가 탓할 수 있으리오.


    더군다나 에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게 되기 오래 전부터 아이들이 대학을 간 뒤에는

    휴식을 취하리라 꿈꾸고 계획하고 있었다. 이민자로서의 삶에 지쳤다며 막내가 대학 진학 후

    회사에서 안식년을 얻던가, 아니면 아예 퇴직하고 좀 쉬었다가 새로운 직장을 찾을까도 고려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와 긴 여행을 하고 싶어했다. 미국 횡단 여행, 남미 여행, 캠핑카 여행...

    그런 꿈을 꾸면서 즐거워했다.


    그런데 아버지 사고가 났고, 에릭의 꿈은 산산조각났다.

    에릭과 나는 생각지 못했던 소용돌이에 빠져 허덕이면서 여러 일을 해치워야했다. 

    초기에는 매일 아버지가 돌아가시냐마냐의 위급한 상황 빈번했고, 병원 모시고 다니기, 

    급격히 나빠진 엄마의 건강 지키기, 집 개조해서 부모님 방 만들기, 부모님 의료보험, 영주권 취득, 

    한국의 재산정리, 집 팔기, 물건 정리, 한국에서 온 많은 짐들을 정리하기...

    그 과정에서 산더미같은 서류, 서류, 서류더미들과 싸우고, 병원, 사무실 들낙날락...


    주로 내가 모든 일을 담당했다고 하지만 에릭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부모님의 집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온 짐을 정리한 뒤 잠시 안정기가 있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건강이 서서히 하락새였기에 나의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음식을 완전히 바꿔야했고, 아버지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수고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버지는 변비가 한번도 없었다!)


    여하간 내가 바빠지면서 에릭과 나는 같이 하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엄마의 노력/배려 덕에  달에 한번 클래식 컨서트 관람하기, 그게 온전한 데이트였다.

    그 외에는 에릭과 내가 같이 하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 커플들과 같이 만나는 일도 없어졌다.

    부모님을 두 분만 두고 주말에 사막집에 다녀오는 것은 위험한지라 점점 더 어려워졌고, 

    일년에 너덧번 가느니 아예 팔아버리는 게 낫지 않는가 고려하게 되었다.

    (그것은 에릭이 사막의 별을 보는 기쁨을 포기해야함을 의미함). 


    우리의 일상에서 에릭과 오붓한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내가 아침 일찍 깨자마자

    뛰다시피 아버지 방으로 내려가고  늦게 올라와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자니말이다.


    회사 끝나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에릭은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에릭이 퇴근하는 오후 6 시, 나와 엄마는 아버지 저녁 식사로 바빴다.

    아버지가 식사 시 자꾸 목에 자주 걸리기때문에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떠먹여드려야했고, 

    아버지가 정신이 맑은 시간에 아버지의 뇌의 활성화를 위해 재밌는 유튜브 프로그램을 찾아드리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하룻 저녁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특히  8 시부터는 '주무시기 전의 준비작업'으로 바빠졌다.  침대에서 변기로 옮겨드리기(두 명이 함께

    해야하는 일), 용변 후휠체어에 옮겨드리기저녁 스낵안면// 운동, 목을 부드럽게 하는 스팀하기

    양치, 소금양치, 두피 마사지, 어깨 마사지 후에 침대에 올려드린 뒤에 욕창 방지하기 위해 면밀하게 

    계획된 여러 장치를 설치하기, 잔잔한 찬송가 틀어드리몸의 위치가 바뀔 때마다 아버지가 기침을 많이

    하시는데 가래를 뱉아내실  있을 때까지 뱉어 내시게끔 해서 받아내기---등등을 하여 아버지가 편안히 

    주무시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끝나면 밤 10시 30 분에서 11 시.


    내가 그렇게 바쁜 동안 에릭은 퇴근 후부터 자정까지 혼자 저녁먹고 혼자 음악듣고 읽거나, 정기적으로 

    아버지 운동 시켜드리고 (아버지는 에릭과 운동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아니면 나의 도우미로서 아버지 

    아버지를 옮기는 일을 도와줬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일찍 잠드는 날이면 30 분간 같이  산책하는  

    말고 우리 둘의 시간은 없었다.


    주말에 늦게 일어나 게으름 피면서 오늘은 뭔가 좀 특별하게 해볼까? 하고 계획한다는 것은 상상금지

    그대신 우리는 아버지 산책을  시에 나갈까아버지 목욕 시간은  시로 해야하나아버지가 

    쉬시는 동안 어느 슈퍼에 가서 쇼핑을 해야하나를 계획해야했다. 달리기, 사이클링과 같은 에릭의 

    취미 생활도 꼭 나와 상의해서 아버지 산책/운동 계획을 세운 뒤 에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를 

    택했다.


    나의 입장에서 에릭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할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딱히 잘못한 건 없으니까.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기도 어정쩡했다.


    내가 에릭에게 충분히 잘해주지 않는다면서 "에릭에게 더 잘해라" "그러다간 애정이 식는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었다. 에릭에게 더 잘해야한다는 것은 부부관계를 살리기 

    위해 관리를 잘해야한다는 것인데 해야할 일이 산더미같은 상태에서 나는 부부 관계를 '관리해서' 

    유지할 힘이 없었다.


    단지 에릭이 힘들어한다면 그걸 이해할 수는 있었다.

    나가서  마시는 것도 즐기지 않고 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것도 없이 해바라기처럼 부인을 향하는데

     태양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으니 삶이 시들시들해지지 않겠는가


    에릭이 결혼 생활에 불만을 느끼고, 그걸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했다고 해도 내가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애매한 처지가 나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에릭이  바람을 피우거나 어느날 불현듯 나더러 못살겠다 이혼하자 한다해도 

    놀라거나 실망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살았다

    아내를 둬서 좋은 것이  하나 없으니 이제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가겠다 하면 깨끗이 보내줘야지 않겠나.

    또한 역경을 같이 이겨낼 마음가짐이 아닌 배우자라면 나를 위해서도 일찌감치 헤어지는 게 낫다 싶었다.


    '여기까지 좋았다. 이제부터는 아니네. 서로 따로 잘 살아보세~' 


    내내 이혼에 대비하면서 사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릭은 한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불만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원래 자기 감정을 쉽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닌데다가 불만의 표현이 없다고 불만이 없다는 것은 아니므로 

    나는 나의 내내 이 '애매한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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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과 드라이브를 할 때 눈물을 흘리며 "단 한번만이라도 더"를 부르짖는 순간, 

    그리고 자기가 왜 Hoyer lift 를 주문했는지 이야기해준 순간, 

    나는 에릭과 내가 매사에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조그만 종지의 죽을 잡숫는데 한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가 그걸 드려보려고 애를 썼듯이,

    에릭은 침대에서 옮기고 준비하는데 1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게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버지를 모시고 산책을 나가려고 했었던 것이다.


    에릭은 나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버지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것이다.


    에릭이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산책을 나간 게 장인을 위한 '의무감'으로만이 아니라 

    그 스스로 아버지와 함께 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지난 3 년 동안 나의 마음의 한 구속에 

    자리하고 있던--이혼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했던--'애매함'이 한순간에 깨끗이 사라졌다.

    애매함이 사라진 빈 자리에 완전한 이해와 온전한 고마움이 들어찼다.


    에릭과 아버지가 '장인'과 '사위'라는 사회적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대 인간으로서 연대하고

    소통하고 사랑했다는 것을 나는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에릭이 지난 3 년간 아버지 산책 모시고 가고, 

    아버지 몸 맛사지 하고 운동을 시켜드리고 밤 늦게까지 잠자리를 돌봐준 게, 배우자인 나를 사랑해서 

    한 일만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었구나.


    불구가 된 아버지의 지독히 무료한 삶에 신선한 기쁨을 불어 넣어주던 산책이란 그 소중한 일상이 

    에릭에게도 소중한 일이었고, 아버지가 산책의 매 순간을 즐기고 감사했듯이 에릭도 아버지와의 산책에 

    집중했고 즐겼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한번만이라도 더' 산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버지가 산책을 

    좋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가 아버지와 함께하는 순간을 누리고 싶어서였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는  "에릭, 나의 아버지를 지켜줘서 고마워' 라고 죽을 때까지 고마워하겠으나

    그런 당연한 고마움의 표현이 무색하리만큼

    에릭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나와 관계없는 독립적인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나는 에릭이 내가 그러했듯이 에릭이 아버지의 편안한 미소를 보면서 흐믓해하고 행복했다는 게 기쁘다.

    나의 아버지, 강대건씨를 모신 지난 3 년이 나에게 그러했듯이 

    에릭에게도 강대건 씨와 함께 한 그 시간이 아름답고 가치있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비 내린 뒤 정적의 호수,

    그 풍경 속으로 에릭과 강대건은 들어갔다. 단 둘이.

    죽음은 그 풍경화를 거침없이 찢어버렸고,

    강대건은 사라졌고,

    그들은 영원히 산책을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들이 같이 즐기고 누렸던 아름다운 산책의 기억은 생생히 남아 있다.

    죽음이 파괴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과 행복의 기억도 남아있다.

    그거면 되었다.








    사랑하는 에릭, 아버지가 말년에 웃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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