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타'는 멕시코 여성으로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주말에 나와 함께 아버지 목욕을 하고, 주중에 저녁에 와서 나를 도와준다.

나는 아니타와 같이 일을 하는 틈틈이 평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한다.

1 년이 넘는 세월을 아니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요양원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직원들의 근무 시간이 어떠한지, 아니타는 몇 시에 출근하고, 아침을 뭘 먹고, 점심 시간은 언제이며, 친한 직장 동료들의 이름은 무엇이며   직장에서 7 시 반부터 3 시 반 퇴근까지 어떤 일을 하는지,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환자, 동료인지.... 

그래서 나는 아니타의 요양원을 아주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다.


가끔은 옷가지들을 챙겨서 아니타의 요양원에 보내기도 하는데 얼마 전에는 친구로부터 셔츠 한박스를 받아 요양원에 보내게 되었다.


아니타는 큰 셔츠 박스를 열어보더니 다 새 옷이라고 무척 좋아했다. 

큼직한 셔츠를 몸에 대보면서 아니타가,

"이건 큼직하니 내 환자 중 한 사람에게 잘 맞겠다.

그이는 몸이 너무 뚱뚱해서 맞는 옷이 없어."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요양원에서 맞는 옷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데?"

"종일 목욕 가운 입고 있는 거지."

목욕 가운?

깜짝 놀랐다.

요양원의 삶도 사회 활동인데.....하루 종일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다고?

"아니, 정말 그렇게 옷이 없어? 요양원에?"

"가족들이 갖다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 맡겨 놓고는 한번도 찾아오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가족들 많아. 우리가 찾아서 입혀주곤 하지만

맞는 사이즈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럼...신발은? 그 뚱뚱한 할아버지는 신발은 뭘 신어?"

"양말."

"휠체어 타고 계신 분이야?"

"아니. 몸은 성하셔. 잘 걷진 못해도 그래도 걸어다닐 수 있어."

"그런데 종일 목욕가운에 양말을 신고 있다고? 요양원도 사회생활인데, 식당에 가고, 카드게임도 하고 그러는 곳인데

하루 종일 목욕가운으로 지낸다니 참 안타깝네."

"그렇지? 그래...."


"할아버지 이름이 뭐야?"

내 질문에 아니타가 잠시 멈칫했다.

"아...몰라...모르겠다. 미안하네. 그 할아버지가 나의 환자이니까  적어도 나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알아야하는데...

근데 말없는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지나치게 된다. 할아버지 이름 모르는 사람 많을 거야."

"할아버지가 치매야?"

"아니...전혀. 그냥 조용한 사람이야. 질문을 하면 대답을 잘하는데 주로 가만히 앉아 있어.

내가 내일 할아버지 이름 물어봐서 너한테 알려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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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가 다음날 문자를 해왔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빅토르, 88세, 딸이 있는데 자기도 몸이 불편하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단다.

빅토르.

내가 바로 사흘 전까지 존재를 몰랐던 이 사람,

이틀 전, '목욕가운에 양말을 신은 할아버지'로 알게 되었고, 이제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그가 나의 부모님 연세임을 안다.


빅토르...

빅토르..


내가 이제까지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는

요양원의 한 할아버지가 내 마음에 살포시 자리했다.


김춘수의 시에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그가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날 밤, 늦게 엄마를 모시고 마켓에 갔다.

빅토르 할아버지를 위해 큼직한 셔츠를 밝은 색깔로 두 개, 바지도 두 개, 스웨터 하나,

그리고 신고 벗기에 편한 신발도 한켤레 샀다.

'엄마, 할아버지 이름 찾아줍시다~~" 하고 엄마께 할아버지 이름을 옷에 써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셔츠에 이름을 쓰시더니만 바지에는 아예 이름표를 만들어 박아버렸다.

"절대로 이름표가 떨어질 일 없을 거야~" 

하고 만족해하시면서...

신발에도 할아버지 이름이 새겨졌다.


할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나도 할아버지 연세의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고, 할아버지 마음에 매일매일 기쁨과 소망이 넘치길 기원했다.


이틀 후, 아니타에게서 문자와 사진이 왔다.

은발의 곱상한 할아버지와 아니타가 활짝 웃으며 찍은 셀피.

아니타가 아침 근무 때 얼마나 바쁜지 아는지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이었다. (아침에 7 명 목욕 시켜주고, 옷 입혀주고, 식사까지 도와주느라 정신 하나도 없음)


빅토르 할아버지에게 파란색 셔츠가 잘 어울리셨다.

빅토르 할아버지는 동영상 속에서 활짝 웃으며 '이런 귀한 선물과 따뜻한 마음에 매우 감사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옷가지와 신발이 돈으로 몇푼 안되는데

그것으로 할아버지가 기뻐하시고

할아버지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이 따뜻하게 되었다.


김춘수의 시가 다시 떠올랐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서로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 우리들...


평생 본 적 없고, 앞으로 볼 일 없을 그 빅토르 할아버지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옷에 적혀진 이름과 이름표를 보면 생각날지도 모르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도

그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어버릴지도....


빅토르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되었고,

'우리의 만나지 않았던 만남'의 여운과 향기가 오래갈 것같다.